잡지에서 읽은 시

여행자들_ 폐역/ 채선

검지 정숙자 2019. 10. 9. 03:07

 

 

    여행자들 - 폐역

 

     채선

 

 

  우리는 어디서 흘러든 슬픔들인가,

 

  빛줄기와 어둠의 교란 속에서

  유목의 낙타가 태어나고

 

  그 낙타가 다른 낙타를 낳고 또 낳는

  모래바람 속

  사라진 도시의 유적지에서 내 슬픔을 만난다.

 

  천 년 전보다 더 오래 울고 있는 사람들

 

  제국에서 생겨나 밤의 국경을 떠도는

  낡은 지도처럼

  어딘가로 떠나기만을 반복한다.

 

  저들은 더 이상 집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개들에게는

  목줄이 필요 없게 되었다

 

  멀리서 빛과 어둠이 포개진다.

  일식의 시차를 밀어내며

  가방을 끌고 들어서는 낯선 여자와 모르는 얼굴들.

 

  더 낯선 사람들은 모래절벽 아래를 지나며

  발을 묻고 또 묻고

 

  우리는 단지

  둥그스름하게 휜 낙타의 등을 닮았을 뿐,

 

  풍선을 매단 아이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역사

  낙타는 보이지 않는다.

 

   --------------

  *『딩아돌하』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채선/ 서울 출생,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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