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빨간 샐비어의 기상예보/ 고형렬

검지 정숙자 2019. 10. 2. 02:34

 

 

    빨간 샐비어의 기상예보

 

    고형렬

 

 

  나는 기상예보란 말을 좋아한다

  1936년 창문사에서 나온

  김기림 시인의 기상도 때문은 아니다

  선친이 새벽마다 기상예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상예보를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300밀리 폭우가 산간에 내리면

  내가 살던 곳에 홍수가 나고  파도가 쳤다

  아이가 빠져죽고 배가 떠내려갔다

 

  나는 지금도 기상예보를 믿으며 살고 있다

  소년 때도 연애시절 때도 사십대 때도

  그것의 불확실성을 믿었다

  더 늙어서도 그것을 믿을 것이다

 

  기상청의 예보관 말이 좀 틀리면 어떤가요?
  좀 틀려야 기상이 아닌가요?

  맞추어 오는 바람과 구름과 비와 해는

  나의 바람과 구름과 비와 해가 아니지요

 

  나는 오늘도 비가 오나 안 오나 하고

  기상 예보를 믿고 우산을 가방에 챙겨 넣고

  도시로 나왔다

  그 가방 속 작은 우산이 나의 마음이다

 

  비가 온다는 날은 입담이 좋아진다

  나는 청량리역쯤에서 기상예보가 틀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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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9. 9-10월호 <신작시 & 대표시>에서

  * 고형렬/ 197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대청봉大靑峰 수박밭』『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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