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애기고양이의 마음/ 박형준

검지 정숙자 2019. 9. 29. 22:10

 

 

    애기고양이의 마음

 

    박형준

 

 

  밤중에 보는 동물들의 눈은 슬퍼보인다

  산책로에 다리를 깔고 앉아 있는 애기고양이

  실뭉치를 뭉쳐놓은 듯

  벌써부터 살아간다는 것은 한 뭉치의

  실뭉치를 풀어가는 일임을 안다는 듯

  가등 아래 산책로 복판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낚시 도구를 실은 오토바이가 나를 앞질러

  실뭉치 같기도 하고 흰 비닐봉지 같기도 한

  애기고양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지나간다

  밤에 낚시를 다니는 사람들은 물고기의 마음을 아는 걸까,

  오토바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애기고양이의 마음도 아는 것일까,

  오토바이는 애기고양이가 산책로 나무 울타리로 몸을 숨기자

  그 모습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여유있게 멈췄다가 사라지고

  누군가 매일 놓아주고 가는 먹이에 입을 대고 있다가

  애기고양이는 나무 울타리 밑에서

  눈을 빠꼼이 내밀고 지나가는 나를 쳐다본다

  밤중에 울지도 않으며 살아본 적도 없을 듯한 눈망울을 한 애기고양이의

  내게로 올 듯한 슬픔이

  부는 바람처럼 몸에 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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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19-가을호 <POSITION ④ 신작시>에서

  * 박형준/ 1991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