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일족/ 배한봉

검지 정숙자 2019. 9. 29. 22:25

 

 

    일족

 

    배한봉

 

 

  선산 언덕에서 머윗대를 베어왔다. 껍질을 벗기는데 손톱 밑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살과 뼈가 삭아 물이 되고 흙이 된 조상의 영토에 뿌리박아 굵고 길게 자란 머윗대, 생각하면

 

  까맣게 물든 손끝이 내 조상이 다녀간 흔적 같다.

 

  까마득한 후손을 머윗대 되어 찾아와 손끝에 풋내 남기고 음식이 되는 지극, 생각하니

 

  머리카락 쭈뼛 일어선다.

 

  창문 열고 하늘을 본다. 듬성듬성 박혀있는 구름들, 하늘 손끝에 남은 머윗대 껍질 벗긴 흔적 같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강이 되고  산이 된 조상의 몸과 숨소리 있었던 자리 같다.

 

  생각하면 머윗대와 물과 흙과 하늘과 구름과 나는 그리 멀리 않은 피붙이구나.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데는 몇 번이나 비가 내리고 햇빛과 바람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감았다 풀기를 되풀이했을까.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문중 피붙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 수런수런 생각 꽃 피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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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19-가을호 <POSITION ④ 신작시>에서

  * 배한봉/ 199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주남지의 새들』『흑조黑鳥』등, 산문집『우포늪, 생명과 희망의 미래』『당신과 나의 숨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