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소주/ 손지안

검지 정숙자 2023. 7. 9. 02:57

 

    소주

 

     손지안

 

 

  뭇 사내들이 주야 하고 불러대니 반할만 한 아가씨다

 

  한때, 울 아부지도 그녀의 아양에 넘어가 엄마 속을 썩이더니 그녀가 준 상처에 병원신세 지고 나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 굳은 맹세에 이별을 고했지만 죽는 날까지 그녀를 향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장롱 안에, 찬장 깊숙이 아버지의 숨겨 놓은 여자로 어릴 적부터 그녀를 무척 싫어했는데 나 역시 세상 살아보니 희노애락 여러 감정의 속 쓰림에는 가슴 안에 바르는 투명한 물연고 그녀가 딱이었다

 

  과거는 많지만 쿨한 그녀의 맑고 깨끗한 매력에 빠져 폐인이 된 사람도 많지만 가끔은 절망의 보약이 되어 "괜찮아"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녀의 다정한 손길에 내일을 향해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아버지의 제삿날에는 아직도 내연의 그녀가 꼭 참석한다.

    -전문(p. 73

 

   ----------------------------------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손지안/ 2016『서정시학』 신인상 수상, 시집『물속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