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비의 입장/ 박수일

검지 정숙자 2023. 2. 3. 01:08

 

    비의 입장

 

    박수일

 

 

  드디어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주먹 쥘 수도 손바닥 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당장 만나겠습니다 이 질문이 끝나지 않은 채로

 

  떨어집니다 사람인 척, 사람들에게 젖어듭니다 나무인 척 짐승인 척 집인 척 허공인 척

 

  젖은 것들은 바닥 쪽으로 피기 좋습니다

 

  그림자와 냄새가 투명해지기 직전, 잊고 지내던 얼굴을 보여줍니다 검은 우산 아래 맨홀 아래 바닥의 바닥 아래

 

  전화도 문자도 불통인 이곳에서

  온몸으로 흔들고 흔들리며

 

  누구는 비상으로 읽고

  또, 누구는 침몰로 읽는

 

  곳곳에 벼락과 돌풍을 동반한 폭우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한 번씩 완전히 미쳐버리는,

      -전문(p.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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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 포럼 제15집『마이클잭슨의 거미』에서/ 2022. 11. 10. <파란> 펴냄

   * 박수일/ 2020년 『시와반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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