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分家
이원복
빚쟁이를 피해 달아나듯 집을 떠났다
아직 우리의 온기가 남은 방에 박힌 몇 개의 못에
우리가 걸어 두고 나온 목소리들
그날 밤 어머니는 홀로 빈 액자 속으로 들어가
못에 걸리셨다
한 집에서 두 집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한 집에서 또 다른 한 집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내가 버린 감당 못할 무게의 겨울 외투들은
어머니의 남은 겨울을 덮어 주었으며
그렇게 나는 거실 한구석 빈 옷걸이가 되었다
안방 빛바랜 벽지를 베어 물고 있던 우리의 그림자들이
어머니의 엎드린 등을 쓰다듬자
내 몸 안에 낯선 방 하나가 새로 생겼고
점점 다른 하나의 집으로 확장되어 갔다
나는 베란다에 버려진 빨래 건조대처럼
좁은 방에 두고 온 어머니를 오래 지켜보고 있다
또 다른 한 집이 되어
주민등록등본 순서대로 누워
첫 밤을 지내며
몇 십 년 후 다가올 또 다른 분가를
걱정한다
-전문(p. 126-127)
--------------------------
* 수요시 포럼 제15집『마이클잭슨의 거미』에서/ 2022. 11. 10. <파란> 펴냄
* 이원복/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 『리에종』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의 입장/ 박수일 (0) | 2023.02.03 |
---|---|
구라바엔/ 장선희 (0) | 2023.02.02 |
파라다이스나무뱀/ 강봉덕 (0) | 2023.01.30 |
고독감별사/ 김익경 (0) | 2023.01.29 |
병든 후박나무 섬/ 정창준 (0) | 2023.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