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바엔
장선희
꽃은 세 번 피었다 졌지
상처가 무늬로 새겨질 동안
나비처럼 날아 봐도 꽃 피지 않았지
나가사키 항에 전함이 들어오면
하얀 제복 푸른 눈
푸르스름 턱선에 지평선이 걸렸지
수줍은 얼굴 속 하얀 쵸쵸
마도로스의 허밍에 멈춘 게이샤의 사랑
사랑의 독기가 산다는 위스키에 취해
갈증 앙상한 뒤태를 만들어 놓지
글로버 하우스로 오르는 언덕길
돌담은 밀어처럼 이끼를 키우고
양산 받쳐 걷던 길 위
게다 신고 뛰어가던 발목도 수국으로 피었지
바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면
연못 속 수척한 제 얼굴 떨구고 있는 수국
삼십 년을 세 번 졌다 피었다고
-전문(p.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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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시 포럼 제15집『마이클잭슨의 거미』에서/ 2022. 11. 10. <파란> 펴냄
* 장선희/ 2012년 『시인광장』으로 등단, 시집 『크리스털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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