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바라보는 사람/ 정월향

검지 정숙자 2023. 2. 5. 00:48

 

    바라보는 사람

 

    정월향

 

 

  대개의 구름은 태양광을 산란한다 수증기가 많을 때는 먹구름이 되기도 한다

 

  먹구름 속에는 무덤이 있다 아득하고 차갑고 몽글거리는 곳이어서

 

  아무 생각이나 다 죽여 놓는다 어떤 새들도 찾지 못하게 깊숙이 묻어 둔다 그 안에서 어둠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숨는다 다시는 나가지 않을 거라 문고리를 걸어 잠근다

 

  비를 만들 때는 번개를 숨겨 둔 책상을 탕탕 치고 종이를 찢어발긴다 생각들은 제발 좀 보내 달라고 울어 댄다

 

  정작 위험한 것은 둔해지는 구름이다 눈동자를 잃어버리고 어깨를 잃어버리고 당신의 기억까지 희미해질 때는

 

  질끈 눈감는 게 상책이다 구름의 아득함이란, 모든 것을 훼손하는 것이다 자르고 녹이고 덮어씌운다 산란하는 생각들······

 

  바라보는 이마 위로 햇빛이 기울어진다

    -전문(p. 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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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 포럼 제15집『마이클잭슨의 거미』에서/ 2022. 11. 10. <파란> 펴냄

   * 정월향/ 2019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부문 대상 & 2021 진주가을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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