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온다
백향옥
나를 풀어서 고치를 짓고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를 기다린다
말을 잃고 시력을 잃고 갇혔다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동풍이 불고 안녕한 오늘, 해를 향해 걷는다
샤콘느를 들어도 슬프지 않은 새벽, 숲은 낮은 바람 소리를 보내준다
사라진 슬픔을 보내준다
비바람 속을 걷는다
비 오는 들판에 머무르면 알게 된다
살아있는 것은 젖지 않는다는 것을
안개 너머엔 무엇인가 있다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강물 속으로 숲이 들어오는 시간
새벽 강가에서 고양이가 기대는 온기로, 그만큼의 기울기로 나비가 온다
초록의 계보에 속한다고 믿으며, 모르는 일을 확신하며 살아간다
아직 사라지지는 않은 길에서 기다릴 수 있다
봄의 열매는 돌처럼 단단하고
나뭇잎은 나비 날개만큼 여려서 만져보면 살고 싶다
나비 돌아온다
-전문-
▶ 디스토피아의 시간, 그리움의 시간(발췌)_차성환/ 시인 · 문학평론가
「나비가 온다」에서 '나'는 "슬픔"의 시간을 견딘다. "비바람 속을 걷"고 "비 오는 들판에 머무르"는 이유는 "나비"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 위함이다. 곧 "나비"가 "고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서이다. "나비"가 오는 시간은 "안개 너머"에서 무언가가 움틀 때이다. 한밤의 어둠이 점차 사라지는 "새벽 강가"의 풍경은 신비로움을 더한다. 사위가 서서히 밝아지면서 "강물"의 수면은 거울처럼 "숲"의 그림자를 담아낸다. "강물 속으로 숲이 들어오는 시간"은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시간이다. "고양이"가 어떤 "온기"를 향해 몸을 기울이듯이 사물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시간인 것이다. "그"는 단 한 순간의 날아오름을 위해서 죽음과 같은 "고치" 속에서 지낸다. "말을 잃고 시력을 잃고 갇"혀 있었던 "그"는 찰나의 기적과 같이 "고치"의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나'의 눈앞에 환영처럼 다가올 "나비"를 기다리는 시간은 어떤 "확신"에 가까운 믿음의 영역이기도 하다.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놓여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곧 따듯한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같이, '나'는 지금의 "슬픔"을 견디어 낸다. "나비"를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기다림의 시간은 "나비"가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는 한 단계 더 성숙한다. "그"라는 존재는 실제 "나비"일 수 있지만 죽음으로 스러진 사랑하는 누군가를 암시할 수도 있다. 죽음의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올 "나비"의 존재는 '나'를 영원한 기다림 속에서 살게 만든다. 지금의 생을 더욱더 간절한 기도로 채워지게 한다. (p. 167/ 론 174_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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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가을(95)호 <신진조명/ 작품론> 에서
* 백향옥/ 경기 여주 출생, 2020년『미네르바> 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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