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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 5/ _ 이별의 부호/ 박호은

금호동 5       이별의 부호     박호은    저 산 너머가 얼마나 좋으면  곱게 단장한 꽃노을  바람난 여자마냥 바삐도 넘어 가는가  내 엄마도 벽제 어느 산을 오르더니 소식이 없다  그 산 너머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초가을 오후 문득 찾아간 엄마의 뜨락  산국화, 쑥부쟁이, 구절초꽃들과 흐드러져  가을 햇살 등에 업고 반짝이고 있더라   그 은밀한 사생활을 목격하는 순간  유년의 저녁으로 소환되던 건조한 눈물   같이 놀던 친구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골목길은 붉은 그늘에 지워졌다   속울음 덮고 누운 밤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엄마의 팔을 감고  새우처럼 잠이 들곤 했다   살아 있는 자가 갑이어서  반짝이는 풀꽃들을 모조리 뽑아버리는 효孝  뿌리에 묻어 나오는 익숙..

금호동 4/ _ 슬픔도 사치라서 외 2편/ 박호은

금호동 4         슬픔도 사치라서      박호은    공동묘지 산비탈에 말뚝 박으면 다 내 땅이었을 때  찬밥 늘린 국밥으로 가난을 밀고 가던 엄마는  거친 생을 다녀가는 마흔여섯의 마침표가 됐다   흑백의 시간이 그늘을 굴리며 간다  날빛보다 더 밝은 곳으로  어린 눈물 밟고 가던 날   풀어버린 손이 미웠다  잡아끄는 울음마저 놓아버린 고요  싸구려 삼베 적삼 두루 말고 비탈 비탈 내려갔다   세상 인연 십삼 년  당신이 가엽다는 첫 생각, 철부지 그 정情이  닥나무 끈처럼 길고 질기다는 걸 그때는 알았을까   뒤돌아보는 눈빛이 있어 마주쳤는지 아닌지  그 마음을 읽어 낼 수 없는  작은 아이도 늙고  기록을 다 훑어도 없는 함시남 그 이름이  내 살 속에 진언처럼 박혀있다   다 타버린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