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전입신고서/ 이선이

검지 정숙자 2024. 10. 21. 00:57

 

    전입신고서

 

     이선이 

 

 

  마당가

  엊그제 입주한 감나무

  허공만 바라고 서서

  가난한 집 아기 젖 빠는 소리를 내며 꽃망울 밀어 올린다

 

  달빛은 전입계 직원처럼 무심히 도장 찍고 가고

 

  아이 알림장처럼 매일 열어보는 창문 위로

  가지들 뻗어 줄까, 내 창은

  저 꽃잎들 무슨 사연으로 받아 들까

  궁금해하면

 

  잎잎이 내려서서는

  전입신고서 쓰고 가는

  별빛들

 

  참사慘事에 아이 잃고 이민 간 친구에게 죽은 아이가 여기 감꽃으로 피었다고

  꽃피니 이별도 견딜 만하다고 차마 쓰지 못하고

 

  일찍 떨어진 열매가 남기고 간

  햇빛이며 달빛 받아

  시퍼런 멍들 온몸으로 열매 되어 가리라고

  썼다 지우는

 

  애기 감꽃 속

  흰 무덤 하나

     -전문-

 

  해설> 한 문장: 엊그제 등장한 꽃망울은 그 존재감이 대단하지만 그 전입은 우주의 어느 빈자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는 아이를 잃고 이민 간 친구의 고통을 기억하는 '나'를 통해서 생과 사의 공존을 발견한다. '나'는 그러한 친구의 고통스럽고 불가해한 시간에 응답하는 말을 찾지 못하지만("쓰지 못하고" "썼다 지우는") 그 말의 한계가 나로 하여금 도리어 목격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감나무가 밀어낸 꽃망울은 별과 달의 승인을 받아 전입을 신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승인 이전에 엄연히 이 세계에 존재한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를 지닌 자연의 현상 앞에서 '나'는 어떤 죽음과 삶이, 사회적인 승인의 방식과는 무관하게 있거나 없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아이의 "알림장"을 열어 보는 엄마의 시간 속에서 아이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이가 생전에 다녔을 기관에서 매일 아이의 소식을 알려 주었을 알림장을 아이가 죽은 후에도 열어 보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이의 죽음은 너무나 개인적인 상실인 동시에 사회적인 응답을 요청하게 되는(참사의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를 요구하고 그에 합당한 대응을 받고 나서야 겨우 작성하고 제출할 수 있을 신고서처럼)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 사진첩에 저장된 사진과 영상이 아니라 공적 지면을 통해 아이를 기억하는 일은 더욱 더 의미심장하다. 그 죽음의 원인이 사회적인 데 있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고통의 발현은 개인적인 삶의 범주에 국한될 수 있지만, 이 시는 그 자리마저도 사회적인 지점으로 명시한다.

  이로써 어떤 죽음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과 의미를 잃은 알림장의 무용함에서 우주적인 생명의 기척을 목격하는 '나'의 시선으로 절묘하게 이어지고 겹쳐진다. 이 포개짐의 자리는 작은 감꽃 속 더 작은 빈 공간("흰 무덤 하나")과도 같은 공감의 가능성으로 열린다. (p. 시 26-27/  133-134) <김나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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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물의 극장에서』에서/ 2024. 10. 16. <걷는사람> 펴냄

 * 이선이/ 경남 진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199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서서 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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