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4 2

오형엽_모티프, 구조화 원리···/ 흉凶으로 지울 수 있는···비트 1 : 신동옥

흉凶으로 지울 수 있는 모든 것  비트 1      신동옥    여자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  털이 무성한 목덜미를 가진 사냥감을 쫓는 강아지  엄마가 손 갈퀴로 파낸 들판을 말없이 질주하던 물소 떼  야전침상 아래서 아빠의 작전 수첩을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  언덕 너머 바다에서 나온 말 없는 물고기  어딘가로 끝없이 뻗은 오솔길이 숨긴 깊고 아득한 참호들   숲에서 깃을 치며 나오는 발 없는 새떼······   한때 우리는 같은 상처의 다른 흉터를 응시했다.  출구가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주저앉고는  빠져나올 길을 영영 잃어버려서  거기다 집을 짓고 산다, 파국이라는 비밀 아지트 속에서  접선할 방법을 영영 잊어버려서   흉터는 신비한 담장이 되어 비트를 구획했다.  우리는 꼭꼭 숨어서 침묵..

유배지에서 추사를 지켜준 꽃/ 강은희(생태작가)

유배지에서 추사를 지켜준 꽃     - 제주수선화> 수선화과    강은희/ 생태작가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볼거리입니다. 강절江浙 이남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마을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없는 곳이 없는데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송이가 많게는 십수화十數花, 팔구악八九萼, 오륙악五六萼에 이르되 모두 그렇게 핍니다.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기 시작해 3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추사의 이 꽃편지가 아니었다면 수선화꽃으로 눈부신 제주 바닷가의 옛 풍광을 상상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8년 3개월의 깊고 두려운 고독 속에 서 있던 그는 수선화꽃 더미로 들이치는 바람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