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람들 2
이현승
반성도 지겹다.
형편없는 연기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커튼콜의 관객처럼
무의미한 반성이 반성 자체를 지운다.
내가 가장 확실하게 아는 것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거의 없다는 것.
나는 돈벌레를 경멸하지만
순수나 양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가만히 현실을 다그치는 눈빛을 존경한다.
돈보다 정직한 것은 없다는 말은 졸부들의 금언이지만
다음 기회가 없다는 가정으로부터
결과보다 중요한 동기는 없다는 맹목이 만들어진다.
적대야말로 얼마나 완고한 스승인가.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사랑한 사람도 없지만
자기 자신보다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그토록 감정적이면서
정작 가장 선호하는 수사가 생략이라는 것은 얼마나 시사적인가.
가령 술김에 불을 질렀던 방화범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반성에 근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천국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용납할 수 없는 분기를 느꼈다.
불은 지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화가 더 나는 쪽도 언제나 약자이며
화를 낸 후에 더 많은 후회가 남는 쪽도 약자이다.
-전문,『생활이라는 생각』(창비, 2015)/ p. 64-65.
▶상상력이란 무엇인가?_ 인사동의 안 모 씨(발췌) _이현승/ 시인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필연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가정형의 문장으로 미래를 옮겨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보들레르주의자들은 여전히 미증유의 시간인 현재를 투명하게 조망하는 것에 더 큰 매혹을 느낀다. 또 그것이 곧 상상력의 진가라고도 생각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불편, 조금 더 확장된 모순 위에서 사실은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이쯤에서 예를 하나 드는 것이 좋겠다. 2013년 3월 8일자 신문에는 "인사동 방화범"이 알고 보니 "쌍용차 농성 천막에 방화한" 인물과 동일인임을 밝히는 뉴스 기사가 있다.3) 뉴스에 따르면 안 모 씨(당시 나이 52세)는 2013년 2월 17일 종로구 인사동 식당가 육미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건물 3층 종업원 탈의실에 올라가 일회용 라이터로 폐지와 의류에 불을 붙여 일대 건물 11채를 태운 혐의를 자백했는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불을 지른 직후에 그가 종로타워의 화재 비상벨을 네 차례나 눌렀으며, 화재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점이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련 사건을 다루는 여러 기사를 종합하면 경기도 양평에서 노모와 단둘이 살며 15년 동안 벌목 일을 해 오던 그가 노모가 돌아가시고 벌목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일월경에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고 폐지를 주워 돈을 벌고 사우나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숙을 하던 중 지저분한 것을 태워 없애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방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화범 안 씨와 관련된 기사를 읽다 보면 방화에 이르는 직접적인 동기가 과대망상이지만, 그가 방화를 저지르기까지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의 모순된 동기인 '정화'와 연결된다. 그는 주거지를 서울로 옮긴 후, 서울시의 청소 자원봉사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가 저지른 인사동 방화와, 쌍용차 농성 천막 방화,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패스트푸드점 쓰레기통 방화까지 모두 일관되게 '정화'에 목적을 둔 방화였다. '정화'라는 동기만 보면 그의 방화는 충분히 선한 의도를 가진 행동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가 탄생시킨 '화마'는 '지저분해 보이는 것들'을 깨끗하게 태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화재에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12개 상점이 전소되고 재산상 4억 7,200만 원의 피해를 입혔다.
안 씨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다가 나는 매우 복잡한 심경이 돨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행위에 다른 목적이, 같은 목적에 다른 행위가 결합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계시처럼 보였다. 정화에 대한 안 씨의 동기를 충분히 참작한다면 우리는 그의 방화를 조금은 더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범죄자를 향한 강력한 적대의 감정을 조금 누그려뜨리고 그러한 이상행동을 조금 더 구조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내가 생각하는 한, 우리 사회의 이상행동들 전과 기록이 없는 살인범, 존속살해, 이른바 묻지 마 폭행 등등 은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급증하고 있고, 나는 개별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뒤편에는 보편적인 사회적 억압이 지나치게 강하게 사람들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런 이상적인 징후에 '혐오'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도 있게 되었으며 이런 혐오는 사회적으로 더 확산되었다.) 나는 안 모 씨와 그 밖의 사람들 때문에 몇 편의 시를 쓰게 되었다. 그 중 한 편이 「뜨거운 사람들 2」이다. (p. 시 125-126/ 론124-125)
* 2013년의 인사동 방화범과 관련해서 여전히 박제된 두 개의 뉴스를 참조할 수 있다. 이지현, 「인사동 방화범, 알고 보니 쌍용차 농성 천막에도」, 『뉴스쉐어』, 2013.3.8.(https://www.newsshare.co.kr/62843), 박진영, 「인사동 방화범 "불 내고 22층서 사진 찍다"」, 『머니투데이』, 2013.3.8.(https://news.mt.co.kr/mtview.php?no=2013030811364040805&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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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24-여름(33)호 <serial / 직업으로서의 시인 2회> 에서
* 이현승/ 시인,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 2002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대답이고 부탁인 말』, 저서『얼굴의 탄생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김수영 시어 사전』(공저), 『김수영 시어 연구』(공저), 『현대시론』(공저), 『이용악 전집』(공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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