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힘을 믿다(전문)
김미옥/ 문예비평가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은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이다. 괴테는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즈의 『디반(Divan)』 시집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 작품은 동방의 시인들과 노년의 괴테가 사랑했던 여인 마리안네에 대한 찬사와 사랑이 주축을 이루며 페르시아의 시 형식인 가젤의 운율을 독일어로 재현했다. 하이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사"다. (p. 201~ )
작품은 초판본에 12개의 시편만 수록되었다가 후에 「유고 중에서」가 추가되었다. 동방의 시인에 대한 찬사와 연인에게 바치는 연가는 생물학적인 나이를 초월하는 괴테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인에게 말한 창작 의도다.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 페르시아적인 것과 독일적인 것을 서로 연결하고 그 양쪽의 풍속과 사고방식을 서로 겹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괴테는 동방 문학에 매료되어 아랍어를 공부하고 역사와 문학을 깊게 탐구한 후 1819년 칠순의 나이에 시집을 펴냈다. 이국적인 시풍으로 은유와 비유, 생경한 단어를 조우해야 하는 독자를 위해 괴테는 해설과 주석을 직접 썼다. 시보다 해설이 더 방대한 『서동시집』은 502쪽의 책에서 「주석과 해설」 부분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례로 「가인 시편」의 첫 시 '헤지르'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박해를 피해 타지역으로 이주한 사건이다. 괴테는 아랍어 '헤지라'를 프랑스어 '헤지르'로 표기해서 프랑스를 통한 아랍문화의 유럽 과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세심한 의미를 부여하니 주석과 해설은 시집을 읽기 위한 안내서이자 '시작 노트'지만 그보다 괴테의 문학론과 철학에 가깝다.
그는 동방 문학을 논하는 첫 장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바이블을 꼽았다. 「롯기」를 서사적이고 목가적이며 아주 사랑스러운 문학 작품이라 칭한 후 「아가」를 전승된 사랑의 이야기 중 가장 열정적이고 우아하다고 언급한다. 이 글은 서양이 동양과 만난 최고의 문학 접점이 성경임을 시사한다. 성서가 오래된 시 모음집이라면 코란에 대한 괴테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예언가인 마호메트는 시를 혐오했고, 시는 물론 『천일 야화』 같은 동화까지 금지했다. 동화의 특성은 도덕적 목적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며 이것은 시에도 적용된다. 예언가는 인간을 도덕으로 얽매지만, 다양한 존재이고자 하는 시인은 모든 경계를 넘어 자신을 보이고자 한다. 예언자의 목적은 단 하나 세상 사람의 '믿음'이다. 괴테는 "다양성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이다."라고 규정한다.
"시는 순수하고 진정한 관점에서 볼 때, 말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그것이 말이 아닌 이유는 시가 완성되려면 박자와 노래와 몸의 움직임과 표정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설에 있는 괴테의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독일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를 생각했다. 그가 뷔르거의 「레노레」를 암송할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의 완성은 낭송이었다.
『서동시집』의 진정한 의미는 타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전통과 양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창작으로 최고의 합일점을 이룬 것이다. 동양을 열등한 문화로 보는 서구 지식인의 관점에서 괴테는 자유로웠다. 19세기는 서구의 자본주의가 용틀임하며 제국주의로 진입하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180년 후 그의 작품 제목을 딴 오케스트라가 탄생한다. 창립자는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이스라엘의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는 동양과 서양 출신의 단원이 반반으로 구성된 악단이다. 그들은 첫 리허설을 괴테가 거주했던 독일 바이마르에서 개최했다. 이곳에서 연주회가 열린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두 사람은 국경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는 문학의 보편성을 괴테의 『서동시집』에서 읽었다. 세계문학의 이념이, 그리고 음악이, 동서 화해를 가능하게 할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드는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 지식인들이 가진 동양의 편견을 비판했다. 계급 해방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는 그가 외친 만국의 노동자에서 동양을 타자화시켰다.
"그들은 스스로 잘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의 발언은 비서구권에 대한 서구 지식인들이 갖는 우월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동양에 대한 그들의 편협함은 식민 지배 권력을 뒷받침하는 힘의 논리이기도 했다.
동서의 화해를 괴테의 문학에서 찾아내어 음악으로 소통하려던 사이드와 바렌보임을 생각한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2011년 우리나라에서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파주의 임진각에서 베토벤을 연주하던 그들의 기원은 평화였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구 세력과 박해받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갈등은 여전하며 지금도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헛된 것일까?
어떤 역사학자는 18세기 세계사적 혁명의 순간에 문학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프랑스혁명이나 노예해방운동이 일어나기 전 사람들은 대중문학을 읽고 약자에 댜한 공감능력을 키우고 연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학자는 인권은 선언된 게 아니라 발명되었다고 말한다. 인권의 원천은 공감이었다. 나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문장을 읽으면 시는 음악이자 춤이며 시의 완결은 낭송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눈으로 시를 읽고 입술에 올려 낭송할 때 비로소 시인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그리고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시집 읽기는 언제나 낭송으로 끝난다. (p. ~ 206)
-사진 (p.202: 『서동시집(West-ostlicher Divan)』 초판(1819년)의 제목 페이지
-사진 (p.203: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 83세)
-사진 (p. 205: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
출처 : Facebook.com/WestEasternDivanOrchestra
---- 위 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블로그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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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 <인플루언서의 현장> 에서
* 김미옥/ 문예비평가, 공저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문학뉴스⟫ '김미옥의 종횡무진' 고정 연재 중, 저서『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미오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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