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구름을 읽다/ 정국희

검지 정숙자 2019. 11. 24. 01:45

 

 

<2019, 제4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작> 中

 

    구름을 읽다

 

    정국희

 

 

  아기 늑대를 찾는 어미 늑대의 울음이 늙은 나무들 사이로 퍼지고 있다. 산맥을 돌아 나오는 길에 새끼가 갑자기 사라졌다. 평소보닫 구름이 많이 낀 날, 감쪽같이 사라지기에 좋은 날이다. 먼 별에서도 볼 수 있는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끊임없이 돌아 오르고, 산을 붙들고 있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숲속으로 깊숙이 퍼지고 있다. 단호한 속도로 퍼지는 울음을 새들이 몰고 날아간다. 단번에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서 단맛이 난다.

  가을이 오기 전에 어서 돌아올 것을 발갛게 목젖 세워 알리고 있다. 먹구름이 숲을 뒤흔들어 울음을 걸러내고 있다. 절벽 아래로 사라지는 구름을 따라 모가지가 꺾였을지도 모를, 혹은 피 묻은 털을 깔고 풀썩 엎어져 있을지도 모를, 그곳엔 아직 살가죽을 팔릴 바람의 채찍은 없을 게다. 분명 죽음을 뚫고 다시 일어설 명당일지도 모른다. 천 개의 눈으로 산의 맥을 짚고 만 개의 다리로 길을 뚫는 법을 알려주었으니 허공의 지탱하여 어미를 찾을 것이다. 찾아서 어미 앞에 위태롭게 나타날 것이다. 사라지기에 딱 안성맞춤인 날, 지독한 단내를 물고 날아간 새들의 행방도 묘연하다.

  -전문, 시집 『로스엔젤레스, 천사의 땅을 거처로 삼았다』(2019)

 

 

  * 심사위원: 이경림(시인) 나희덕(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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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9-겨울호 <제4회 동주문학상/ 수상작>에서

  * 정국희/ 2015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라임 1집(2005), 시인의 악기상점 1집(2019),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 멀리" OST 앨범참여(2019) , 현재 KBS라디오, DBS라디오, 문장의 소리 등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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