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의 은유
정철훈
친척에게는 돈을 빌리지 않는 게 철칙이라는데
안 꿀 수도 없고 그냥 만나기도 서먹해
시집에 사인을 해 내밀었더니
시집 한 권 쓰는 데 얼마나 걸리오?
글쎄, 한 사오 년
인세는 얼마?
돈 백이나 될까
사오 년 고생 끝에 달랑 백만 원이면
뭐 하러 글을 쓰오?
글쎄
주고받는 말들이
대책 없는 미세먼지 같았다
막걸리 잔을 급하게 비운 뒤
두부를 젓가락으로 자르다 말고
다시 소박하게 말을 붙인다는 게
옛사람들은 사랑 고백을 어찌했는지 아오?
모르오
달이 참 밝네, 라고 했다지
그걸 은유라고 하지
은유를 알면 생활에 도움이 되오?
글쎄
딴은 그렇다
생활은 은유가 아니지만
은유에서 생활을 꾸어올 수는 있다
오다 보니 길거리 좌판에 토마토가
달관한 듯 빨갛게 익어 있었다
토마토에게서 달관의 은유를 얻은 게
어디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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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정철훈/ 1997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살고 싶은 아침』『개 같은 신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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