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독무獨舞
강정
펼친 독수리 날개마냥 도사린 능선 사이로
보름달이 떴다
목젖에서 철사를 꼬아 만든 나무 같은 게
삐죽삐죽 허공을 쪼던 참이었다
몹쓸 짓 하다 들킨 아이처럼 등을 보였다가
이내 돌아서 달을 마주봤다
눈 깜빡일 때마다
길게 뻗치는 능선 줄기의 잔광이
하늘을 펄럭이는 누군가의 춤사위 같았다
목젖 아래 나무가 따끔따끔 심장을 찔렀다
누런 녹물 같은 비애, 라 낮게 읊조렸다
호명인 듯 대거리인 듯
뻐꾸기 울음소리가 이편으로 사무쳐 혀를 달구고
15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빛의 단말마를 따라
고요히 몸을 비트는 동안,
입을 동그랗게 벌려 달 삼키는 시늉을 했다
몸보다 큰 그림자가 동쪽 향해 양팔을 너울거리며 긴 밤을 덮었다
아침 나무 끄트머리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
쇳소리 토하며 달이 놓였던 자리에서 제 그림자 추스르는데,
춤추다 참형된 내 그림자의 본체였을까,
원래 은銀이었던 수저가 나무토막이 되어
밥상머리에 부식토를 담을 채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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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강정/ 1992년『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처형극장』『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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