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철
박승자
맛있는 것을 아껴 먹은 버릇이 있어
불 켜진 백열등 같은 환한 봄을, 조금씩 뜯어 먹네
움푹 뒤꿈치가 파인 신발 위에 또 신발이 겹쳐지네
고만고만한 신발 중에도 유독
작은 문수 한 짝을 집어 들며
가볍다, 보드랍다
전족을 한 버선발처럼
밤눈이 내린 마당
찬장 쌀밥에 난 생쥐 발자국처럼
달빛도 환한 백열등처럼 희디희기도 해라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맨발은 꽁꽁 언 찬밥 덩어리
눈 내리는 창을 항상 바라보고 계셨지
왜 북쪽으로 창을 내셨어요
웅얼웅얼 잠꼬대처럼 어린 나는 夢問을 한다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둘 말며
그녀의 夢遊를 애써 외면하면
북쪽으로 간 사람을 기다리는 자세란다
라는 답을 듣는다
한바탕, 창들이 흔들리고
싸락싸락, 희디흰 소리
마루 끝에 엎어져 있던 하얀 고무신 위로
눈나비를 한 송이, 한 송이 날려 보내며
난 맛있는 것을 아껴 먹은 버릇이 있어 얼음 조각을
입에 물고
고무신 위의 나비잠을, 북쪽 창을, 폭설이거나 광폭한 바람을
목련철, 나의 생 동안 조금씩 뜯어 먹었다네
---------------
*『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박승자/ 2000년《광주일보》신춘문예로 & 201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곡두』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 철학/ 임내영 (0) | 2019.11.24 |
---|---|
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한선자 (0) | 2019.11.24 |
달의 독무(獨舞)/ 강정 (0) | 2019.11.24 |
구름을 읽다/ 정국희 (0) | 2019.11.24 |
컬러풀/ 정현우 (0) | 2019.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