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컬러풀/ 정현우

검지 정숙자 2019. 11. 24. 01:20

 

 <2019, 제4회 동주문학상 수상작> 中

 

  컬러풀

 

  정현우

 

 

옥상 문을 걸어 잠그고 밥을 먹었다.

멸치의 눈이 친구의 눈빛 같았다.

땅거미가 사람들을 갉아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투명한 가윗날 소리,

노을 속 색종이들이 살랑였다.

잔상이 길게 남으면 명암이 튀어 올라

실눈을 지그시 떴다.

맞은편, 미술실 토르소는 하얗게 부서졌다.

한 조각 어둠이 내 등을 밀 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색이 궁금했다.

 

난간을 붙잡고,

발밑으로 대답이 없는 어둠,

검은 호수가 몸속을 떠돌았다.

못은 나를 들여다보았고

감정을 옮기는

빛들의 통로,

무언의 물감 속에 있었다.

색칠되지 않는 마음은 기쁨도 슬픔도 잴 수 없던

두 팔 안에 가둔 시간.

 

살아 있으려는 색은 무엇일까.

눈가에서 정물이 쓰러질 때,

변성기로 굽은 순간은

투명을 통과하는 검은 깃들,

마지막을 거는 새들의 첫 비행.

 

물감은 왜, 검은색으로 이동되지,

모두 섞으면 거대한 검은색 마침표가 도달하는지.

청동색 토르소가

회갈색 비늘을 떨어뜨린다.

 

나의 보호색은 나의 적.

  -전문-

 

 

* 심사위원: 이경림(시인)  나희덕(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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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9-겨울호 <제4회 동주문학상/ 수상작>에서

* 정현우/ 2015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라임 1집(2005), 시인의 악기상점 1집(2019), 영화 "나의 노래는 멀리 멀리" OST 앨범참여(2019) , 현재 KBS라디오, DBS라디오, 문장의 소리 등 구성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