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토마토의 은유/ 정철훈

검지 정숙자 2019. 11. 23. 03:00

 

    토마토의 은유

 

    정철훈

 

 

  친척에게는 돈을 빌리지 않는 게 철칙이라는데

  안 꿀 수도 없고 그냥 만나기도 서먹해

  시집에 사인을 해 내밀었더니

 

  시집 한 권 쓰는 데 얼마나 걸리오?

  글쎄, 한 사오 년

  인세는 얼마?

  돈 백이나 될까

  사오 년 고생 끝에 달랑 백만 원이면

  뭐 하러 글을 쓰오?

  글쎄

 

  주고받는 말들이

  대책 없는 미세먼지 같았다

  막걸리 잔을 급하게 비운 뒤

  두부를 젓가락으로 자르다 말고

  다시 소박하게 말을 붙인다는 게

 

  옛사람들은 사랑 고백을 어찌했는지 아오?

  모르오

  달이 참 밝네, 라고 했다지

  그걸 은유라고 하지

  은유를 알면 생활에 도움이 되오?

  글쎄

 

  딴은 그렇다

  생활은 은유가 아니지만

  은유에서 생활을 꾸어올 수는 있다

 

  오다 보니 길거리 좌판에 토마토가

  달관한 듯 빨갛게 익어 있었다

  토마토에게서 달관의 은유를 얻은 게

  어디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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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정철훈/ 1997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살고 싶은 아침』『개 같은 신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