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목련철/ 박승자

검지 정숙자 2019. 11. 24. 15:55

 

 

    목련철

 

    박승자

 

 

  맛있는 것을 아껴 먹은 버릇이 있어

  불 켜진 백열등 같은 환한 봄을, 조금씩 뜯어 먹네

 

  움푹 뒤꿈치가 파인 신발 위에 또 신발이 겹쳐지네

  고만고만한 신발 중에도 유독

  작은 문수 한 짝을 집어 들며

 

  가볍다, 보드랍다

  전족을 한 버선발처럼

 

  밤눈이 내린 마당

  찬장 쌀밥에 난 생쥐 발자국처럼

  달빛도 환한 백열등처럼 희디희기도 해라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맨발은 꽁꽁 언 찬밥 덩어리

  눈 내리는 창을 항상 바라보고 계셨지

  왜 북쪽으로 창을 내셨어요

  웅얼웅얼 잠꼬대처럼 어린 나는 夢問을 한다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둘둘 말며

  그녀의 夢遊를 애써 외면하면 

 

  북쪽으로 간 사람을 기다리는 자세란다

  라는 답을 듣는다

 

  한바탕, 창들이 흔들리고

  싸락싸락, 희디흰 소리

  마루 끝에 엎어져 있던 하얀 고무신 위로

  눈나비를 한 송이, 한 송이 날려 보내며

 

  난 맛있는 것을 아껴 먹은 버릇이 있어 얼음 조각을

  입에 물고

  고무신 위의 나비잠을, 북쪽 창을, 폭설이거나 광폭한 바람을

  목련철, 나의 생 동안 조금씩 뜯어 먹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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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박승자/ 2000년《광주일보》신춘문예로 & 201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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