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용기_ 화요문학 선정 2019 리뷰 시/ 화살 : 김기택

검지 정숙자 2019. 11. 11. 01:54

 

 

    화살

 

    김기택

 

 

  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며 퍼져나가고 있다

  -전문, 시집『울움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현대문학, 2018)

 

 

   ▶ 화요문학 선정 2019 리뷰 시_ 정용기

   '쏜살'은 시위에서 벗어나 과녁으로 향하는 화살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과녁에 꽂히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은 어떤 망설임도 고뇌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맹목적인 속도만 있을 뿐이다.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는 순간 환희와 아쉬움이 나뉘면서 모든 것은 결판이 난다./ 그런데 '여전히 멈추지 않는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는 화살이 있다.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시인은 찰나의 영감을 받드는 사람이다. '쏜살'같이 순식간에 찾아오는 영감을 일필휘지 갈무리하여 좋은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으면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영감을 붙들고 고군분투하는 시인은 아직도 '깜깜한 나무 속에'서 퍼덕거리고 있다. 저 '뜨거운' 열정으로 나이테를 헤집으며 황홀한 무늬를 찾아 무모하게 길을 나서는 시인은 화살이다. (p. 211)  

 

   ---------------

  * 무크『화요문학』2019 / 23호 <리뷰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