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악수를 건네며/ 최일화

검지 정숙자 2019. 11. 10. 13:30

 

 

    악수를 건네며

 

    최일화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적이 되는 데 성공했다

  나는 한 번도 그를 적으로 생각한 적 없는데

  어느 날 그는 내게 다가와 자진하여 나의 적이 되었다

  창을 높이 들고 고함을 지르며

  어서 덤벼 보라며 나의 반격을 유도하고 있었다

  나는 적의가 없었으므로

  그의 적의는 오로지 그의 적의였으므로

  아무런 기색도 없이 꽃들은 피었다 지고

  악마에게 천사가 적이라면 시인의 적은 무엇인가

  적이란 상대를 죽이고 승리를 얻어내는 것

  기습 공격이 때로는 전세에 유리하다

  내일은 또 누가 그의 적이 되어

  포승줄에 뮦인 풍뎅이처럼 버둥댈지

  버둥대다가 육신도 혼령도 털려 빈껍데기가 될지

  세상엔 무수히 많은 나의 적들

  무수히 많은 그의 적들

  내가 총탄을 맞고 한동안 거동을 못할 때

  그도 내 총탄을 맞고 한동안 생사를 헤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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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9-11월호 <신작시 # 2>에서

  * 최일화/ 1986년『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그의 노래』『시간의 빛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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