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돌 아래 풀 외 1편/ 송은숙

검지 정숙자 2019. 11. 11. 00:32

 

 

    돌 아래 풀 외 1편

 

    송은숙

 

 

  사각형 돌들을 박아 만든 주차장

  돌과 돌 사이마다 풀이

  잔디며 독새풀이며 마디풀 같은 것이 빼곡하다

  살고자 하는 것들 저리 허공 휘저어 그어놓은 눈금

  초록 분필로 그린 모눈종이 같다

  빈틈없이 급급하다

  땅을 고르고 돌을 놓을 때 어느 싹은

  온몸 노랗게 되도록 벽을 긁다가

  색을 거두고, 줄기를 거두고

  한 점으로 오그라들어 깊이 단단해졌다

  빛의 기억을 품고 지그시 어둠을 견뎠다

  종일 내린 봄비가 햇살처럼 흘러넘칠 때

  기억은 풍선츠럼 부풀어

  옆으로 옆으로 먼 길을 돌아 터져 나온다

  돌과 돌 사이는 빈틈없이 급급하다

     -전문-

 

 

    -----------

    봉숭아물

 

 

  봉숭아물을 들일 땐 꽃잎뿐 아니라

  봉숭아잎도 넣는다

  잎을 넣는 게 물이 더 잘 돈다 더 붉다

 

  봉숭아잎을 찧을 때

  잎맥이 끊어지고 살이 으깨질 때

  초록물이 배어나온다

  초록은 마음을

  초록은 마음을 베인 색깔이다 날카롭다

  손톱에 친친 감긴 초록은 묵처럼 엉겨

  하룻밤 새 붉게 변한다

  마음이 붉어진다

  처음부터 붉은 단풍보다

  초록이었다 붉어진 단풍이 더 붉다

  애초에 초록은 붉음과 같은 색이다

 

  봉숭아물을 들일 땐

  꽃잎 뿐 아니라 마음 한 조각 넣어야 한다

     -전문-

 

 

  ---------------

  * 무크『화요문학』2019 / 23호 <시인 조명>에서

  * 송은숙/ 2004년《시사사》로 시 부문 & 2017년 『시에』로 수필 부문 등단, 시집『돌 속의 물고기』 등, 시론집『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