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폴론 신탁/ 김백겸

검지 정숙자 2019. 11. 11. 00:06

 

 

    아폴론 신탁

 

    김백겸

 

 

  꿈속에서 찾아간 대전시 대흥동 옛집은 아폴론 신전처럼 과거와 미래의 운명을 품고 있는 괴물이었다

  현실의 고통에 지쳐 어느 날 꿈길을 따라 찾아갔더니

  부모님이 저승의 깨달은 현자처럼 빛나는 후광의 얼굴로 나를 보고 웃던 집

  델포이 아폴론 신전처럼 신들이 인간의 어리석은 삶과 희극을 조소하며 연출자의 나레이션(narration)을 상징 메시지-꿈으로 계시하는 집

 

  인생의 폐허 속에서 질문자가 된 자가 아폴론 신탁을 구하기 위해 델포이 성소로 가야 하는 수수께끼

  보르헤스의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이 시간의 풍경을 만드는 마야(maya)를 걸어온 자가 신탁을 구하는 수수께끼

  소크라테스가 태양신 아폴론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과 스핑크스의 질문을 푼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뽑고 사막을 헤매는 여행에 대한 수수께끼

  '너 자신을 알라' 같은 신탁의 계시 속에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 성공과 좌절, 지혜와 어리석음에 관한 삶의 알레고리가 있는 수수께끼

 

  꿈속에서 찾아간 대전시 대흥동 옛집이 아폴론 신탁-시인이 운명을 나에게 전하는 이유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일진광풍의 바람이 불면서 옛집의 기둥이 빛으로 빛나고 기와는 까마귀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갔다

  성지聖地가 품은 원형의 힘들이 세상의 껍질을 뚫고 옛 집을 히에로파니(hierophany)의 신전으로 변신시켰다

  무의 세계에 갇혀 있는 옛 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자신을 추억하게 했다

  나는 내 마음의 어둠속에서 델포이 아폴론 신전처럼 스스로 불사의 괴물이 된 집을 지키는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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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크『화요문학』2019 / 23호 <시인 조명>에서

   * 김백겸/ 1986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거울아 거울아』등, 시론집『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