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날개를 공중에 감춘 오리가 쏟아진다/ 최서진

검지 정숙자 2019. 10. 30. 01:54

 

 

    날개를 공중에 감춘 오리가 쏟아진다

 

     최서진

 

 

  어제의 구름으로부터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본다 바닥을 걷다가

  다리가 짧아 다른 발에 밟히는

  그때부터 우리는 겨울비같이

 

  차갑고 딱딱한 살점을 떼어내며 누가 겨울 하늘을 꺼낸다

  날개를 공중에 감춘 오리가 쏟아진다

 

  너는 등 뒤가 되었구나

  날지 못하는 오리가 되었구나

  돌이키고 싶은 무성한 시간이 나무에 있다는 듯

  나무가 대신 잎을 세고 있다

 

  여전히 어떤 구름에 연루된 것 같아서

  너는 하얀 날개를 땅에 떨어뜨리고

 

  눈을 깜박여 눈물의 방어벽을 만든다

  저녁해가 들어온다

  지평선이 가시에 찔려 빻갛게 된다

 

  모든 구름을 그곳에 넣고 딛을 것이다

  햇빛은 열쇠의 의혹에 대하여 두 번째 서랍처럼

  더 단단해질 것이다

 

  겨울비가 벌레처럼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

   *『시현실』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최서진/ 2004년『심상』으로 등단, 시집『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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