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불가능한 것들/ 박민서

검지 정숙자 2019. 10. 30. 02:33

 

    불가능한 것들

 

    박민서

 

 

  불가능한 직업들이 많았으면 해

  일자리란 그래야 해

  가령, 머리카락을 세는 법

  검은 숫자로 시작해서 흰 숫자롤 끝이 나는 일

  중간에 몇 번은 헝클어지고 말겠지

  아이의 말로 세다가 

  할머니의 말투로 끝나겠지

  어쩌면 가르마를 지날 때쯤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세고 있을지도 모르지

  음력 날짜만 손가락에 걸고 사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하지.

  손안에 든 숫자가 무덤 위로 쏟아져버렸다면

  헝클어지는 일은 각오해야 하는 일

  처음부터 다시 세는 일도 있겠지

 

  다 세어 놓은 머리카락 쪽에서

  빠지는 올올이 있겠지

  밤과 낮을 헤집다 보면

  불가능한 직업이란

  평생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력을 거꾸로 넘기면

  역마다 놓쳤던 기차들이 

  숨 가쁘게 돌아올지 몰라

  그땐 기계적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분명 있을 거야

  그러니까,

  불가능한 직업들이 많아져야 해

  그래야 가능한 것들이 지워지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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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박민서/ 2019년『시산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