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플라나리아/ 정선

검지 정숙자 2019. 10. 30. 02:12

 

 

    플라나리아

 

     정선

 

 

  내 몸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냇물엔 내성이 생긴 플라나리아들이 산다

 

  간에 붙어 고통의 살점들을 뜯어먹고 자란다

 

  오염된 혈관을 따라 돌다 숨어든 심장

 

  품고 있는 한 가닥 빛마저 마지막 날숨에 실어 보내고 손바닥으로 욕지기를 덮는다

 

  새어 나온 빛이 꼬물거려도 재생할 그 아무것도 없는 아침

 

  거친 한숨과 울음이 엎질러진 광장 등 뒤로 축축한 햇살이 배밀이를 하고 있다

 

  이슬 한 잔으로 몸의 부피를 줄인다

 

  제 몸의 양분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 점점 부조가  되어가는

 

  어느 날부턴가 플라나리아는 모든 것을 버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버린 만큼 가벼워져 재로 탈바꿈한 몸 안에는 활화산처럼 살다 간 한 여자가 웅크리고 있다

 

  안개를 이불 삼고 몸을 잘라 제 몸속에 정열 을 낳은 여자

 

  너무도 깨끗한 물이 견딜 수 없어 생을 스스로  녹여 버리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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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현실』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정선/ 2006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에세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