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들
박민서
불가능한 직업들이 많았으면 해
일자리란 그래야 해
가령, 머리카락을 세는 법
검은 숫자로 시작해서 흰 숫자롤 끝이 나는 일
중간에 몇 번은 헝클어지고 말겠지
아이의 말로 세다가
할머니의 말투로 끝나겠지
어쩌면 가르마를 지날 때쯤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세고 있을지도 모르지
음력 날짜만 손가락에 걸고 사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자란다고 하지.
손안에 든 숫자가 무덤 위로 쏟아져버렸다면
헝클어지는 일은 각오해야 하는 일
처음부터 다시 세는 일도 있겠지
다 세어 놓은 머리카락 쪽에서
빠지는 올올이 있겠지
밤과 낮을 헤집다 보면
불가능한 직업이란
평생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력을 거꾸로 넘기면
역마다 놓쳤던 기차들이
숨 가쁘게 돌아올지 몰라
그땐 기계적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분명 있을 거야
그러니까,
불가능한 직업들이 많아져야 해
그래야 가능한 것들이 지워지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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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실』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박민서/ 2019년『시산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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