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요섭_ 그 허망함에도 불구하고(발췌)/ 개를 기르는 시간 : 유병록

검지 정숙자 2019. 10. 11. 20:01

 

 

    개를 기르는 시간

 

    유병록

 

 

  그는 개를 길렀다

  젊은 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집어삼킬 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가 태어났다

 

  가슴을 쥐어뜯듯이 마음을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개가 달려와서 신 혀로 핥아먹었다

 

  개는 무럭무럭 자라고

  그는 인내심이 강하고 겸손하여 신사적인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개는 그에게만 보였다

  아무도 그의 곁에 있는 덩치 큰 개를 보지 못했다

 

  큰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지

  개가 그를 끌고 다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개와 함께

  그는 평온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죽었다

 

  오랫동안 기르던 큰 개도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남은 사람들이 알 수는 없었다

    -전문-

 

 

   ▶ 그 허망함에도 불구하고(발췌)_ 김요섭/ 문학평론가

  개를 기르는 사람은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두근거릴 때마다, "가슴을 쮜어뜯듯이 마음을 꺼내어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그가 기르는 개가 그 마음을 다 핥아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게에게 주체할 수 없이 격렬했던 마음들을 뜽어줄수록 개는 커져만 가고, 그 개를 기르는 남자는 "인내심이 강하고 겸손하며 신사적인 사람으로 존경받"으며 살아갔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덜어낼수록 강한 인내심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지만, 첫 시집에서 시인이 보여준 인내가 단호한 다짐으로 죽음조차 견대어 내는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 존경의 시선이 포착한 것은 일상의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서 덜어내고 남겨진 형상일 것이가. 그렇게 마음을 덜어내고 남겨진 자신이 가벼워졌기 때문인지 그가 개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개가 그를 끌고 가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렇게 개에게 자신의 마음을 뜯어주며 유지한 일상의 평행 덕에 개를 기르는 사람은 "평온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죽었다"지만 그가 개를 기르고 있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의 평온함이 실상은 개에 끌려가는 것에 불과했음을 누구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래서 자기 마음을 뜯어내면서까지 견디던 그의 고단함을 아는 이도 끝내 없다.(p. 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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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9-9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작품론> 에서

  * 유병록/ 2010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 김요섭/ 문학평론가, 201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문학웹진 『과자』를 발행하는 문학동인 <과자당>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