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골방 엽서/ 권성훈

검지 정숙자 2019. 10. 2. 17:49

 

 

    골방 엽서

 

     권성훈

 

 

  새끼를 키우려고 새끼를 내다 팔던 할머니

  지하 골방에 죽음이 다녀갔다

  개를 기르던 노인이

  노인을 기르던 개가 들어 있다

  홀로 두고 발길 돌리기 안타까웠는지

  두 장 빛바랜 엽서처럼 붙어

  서로를 애처롭게 만지고 있다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는 듯

  생애를 지리고 나온 똥의 기억들

  지독한 흉터로 인쇄된

  증표같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다

  개는 노인의 주검을 지키며

  쉰 목소리로 부고를 짖어 댔을 것이다

  한 달 동안 굶어 죽은 개소리가

  노인이 끄지 못한 삼십 촉 백열등처럼

  희미하게 저물어 가는 12월 우체통

  수취인이 없지만

  뜨겁게 쓰다가도 차갑게 지우고 있다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실천문학> 2019년

 

   --------------

  *『시와표현』 2019. 9-10월호 <중견 시인 초대석_근작시>에서

  * 권성훈/ 2002년『문학과의식』으로 시 부문 2013년『작가세계』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외,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편저『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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