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엽서
권성훈
새끼를 키우려고 새끼를 내다 팔던 할머니
지하 골방에 죽음이 다녀갔다
개를 기르던 노인이
노인을 기르던 개가 들어 있다
홀로 두고 발길 돌리기 안타까웠는지
두 장 빛바랜 엽서처럼 붙어
서로를 애처롭게 만지고 있다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는 듯
생애를 지리고 나온 똥의 기억들
지독한 흉터로 인쇄된
증표같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다
개는 노인의 주검을 지키며
쉰 목소리로 부고를 짖어 댔을 것이다
한 달 동안 굶어 죽은 개소리가
노인이 끄지 못한 삼십 촉 백열등처럼
희미하게 저물어 가는 12월 우체통
수취인이 없지만
뜨겁게 쓰다가도 차갑게 지우고 있다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실천문학>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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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 2019. 9-10월호 <중견 시인 초대석_근작시>에서
* 권성훈/ 2002년『문학과의식』으로 시 부문 & 2013년『작가세계』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밤은 밤을 열면서』외, 저서『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편저『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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