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지질 시간/ 김백겸

검지 정숙자 2019. 10. 2. 18:22

 

 

    지질 시간

 

     김백겸

 

 

  야훼가 진흙에 숨을 불어 넣어 창조한 인간 기호-아담(Adam)

  로마인들의 흙이라는 뜻으로 부른 인간 기호-호모(Homo)

  불가佛家에서 인간은 대지로 돌아가 적정寂靜을 얻는 존재라는 뜻으로 기록한 열반涅槃 기호-니르바나(Nirvana)

  흙의 인간이 문명 기호로 쓴 지구 양피지에는 「천일야화千日夜話」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B.C 1만 년 전 충적세의 온화함 속에서 인류는 신석기 농업혁명을 시작했다는 기록

  잉여농산물이 도시를 만들고 왕과 군대와 관료와 세금과 정복전쟁과 노예를 만들어서 인류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기록

  마약과 술이 인간 뇌를 자극해 진화의 오랜 잠 속에 갇혀있던 꿈의 의식-에고(ego)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깨어나고 인류는 세상의 영토를 기호와 숫자의 지도에 가두기 시작햤다는 기록

  종교와 예술과 과학의 가상과 가설들이 팽창을 시작해서 밈(meme) 스토리들이 유전자 DNA처럼 대대손손 인간 뇌에서 떠돌아다녔다는 기록

  자본과 기술이 인간세를 축복해서 70억 인구가 하늘의 별처럼, 일억 가지의 상품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넘쳐났다는 기록

  세계 열방에서 생산된 식품이 입맛에 맞춘 종류대로,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재단한 옷이 패션에 따른 종류대로, 화물선과 수송기로 나라의 항구와 공항마다 도착했다는 기록

  인간의 호기심이 컴퓨터와 휴대폰과 게임기를 제조하였으니 역사 이래 모든 지식과 재화에 대한 관리정보가 마이크로 칩의 메모리로 들어갔다는 기록

  시장에서는 도로와 철도가 문명의 동맥과 정맥처럼, 하늘에서는 구글 검색 네트워크가 문화의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는 기록

  문명의 특이점에서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무장한 AI-알파고(AlphaGo) 제로가 출현하였는데 이로부터 시작된 기계 문명의 창세創世가 빛의 속도로 굴러갔다는 기록 

 

  호모 에렉투스(Erectus)-흙으로 돌아가 일부 뼈만 남았다

  호모 사피엔스(sapiens)-네안데르탈렌시스는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크로마뇽인과 북경원인으로 갈려 유전자를 전달했으나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호모 파베르(Faber)-도시와 문명을 건축했던 도구 인간도 흙으로 돌아갔다

  호모 루덴스(Ludens)-놀이하는 인간도 흙으로 돌아갔다

  호모 데우스(deus)-전지전능의 과학 지식과 기술 능력으로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른 인간도 흙으로 돌아갔다

  세상의 모든 인류가 가이아(Gaia)여신-칼리(Kali)의 집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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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9. 9-10월호 <신작시 & 대표시>에서

  * 김백겸/ 1983년《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거울아 거울아』외, 시론집『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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