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세한도/ 유자효

검지 정숙자 2023. 8. 28. 01:01

<2005, 제1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세한도

 

    유자효

 

 

  뼈가 시리다

  넋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도의 위리안치

  찾는 사람 없으니

  고여 있고

  흐르지 않는

  절대 고독의 시간

  원수 같은 사람이 그립다

  누굴 미워라도 해야 살겠다

  무얼 찾아 냈는지

  까마귀 한 쌍이 진종일 울어

  금부도사 행차가 당도할지 모르겠다

  삶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고 치부해도

  귓가에 스치는 금관조복의 쓸림 소리

  아내의 보드라운 살결 내음새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 소리가

  끝내 잊히지 않는 지독한 형벌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질긴 목숨의 끈

  소나무는 추위에 더욱 푸르니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전문(p.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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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유자효/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 1972년 『시조문학』에 「혼례」 발표하며 등단, 시집『성 수요일의 저녁』『떠남』『내 영혼은』『지금은 슬퍼할 때』『금지된 장난』『아쉬움에 대하여』『성자가 된 개』『여행의 끝』『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등, 수필집『세상의 다른 이름』『다시 볼 수 없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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