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터널에 관한 보고/ 천융희

검지 정숙자 2019. 11. 3. 22:30

 

    터널에 관한 보고

 

    천융희

 

 

  빛이 소환되지 않는 긴 암반의 시작점

 

  굴착된 터널은 다각적이지 않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추월도 분절도 없다

 

  내일의 경계가 보호한 도시의 밤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다만

  되풀이되는 관습처럼 바람의 회전문을 궁굴린다

 

  슬그머니 들어섰다가 끝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익명의 계보들

 

  높은 회전율에 따라붙지 못한 바퀴의 속도가

  집 앞 도로를

  어디라도 들이박을 듯 어둠을 찢고 관통한다

 

  한 줄 굉음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다

 

  거친 암벽暗壁을 노련하게 더듬다 때론

  역주행으로 치닫는 우리는

  어쩌면 어둠의 기호인지도 모른다

 

  무뎌진 방향을 한동안 추스르는 어스름 너머

  천천히 번식하는 미명

 

  어둠의 발목을 채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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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2019-가을호 <미래시학 시단Ⅲ>에서

  * 천융희/ 경남 진주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