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속도의 뒷면/ 이혜순

검지 정숙자 2019. 11. 3. 22:20

 

    속도의 뒷면

 

    이혜순

 

 

  여름을 싣고 달리던 자전거 한 대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에 부딪혀 바닥으로 나뒹군다

 

  요란한 비명과 함께 넘어진 속도

  도로 한가운데 배를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있다

  행렬을 이루며 달리던 길을 내려놓고

  황급히 달려온 사람들

  함께라는 말속엔 질긴 고리가 엮여있다

 

  두 개의 페달에 감겨 있는 속도

  일정하게 놓이는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

  막힘없이 술술 풀려나가다가도

  엇박자를 내는 순간 요란하게 뒤엉켜버린다

  엉킨 것들을 풀기 위해선

  깨진 무릎과 튀어나오는 비명을 삼켜야 한다

 

  걸림돌 하나가 깨뜨린 평온

  아침부터 균형을 잃은 시간은

  종일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거린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당신과 나의 불협화음

  두 개의 바퀴가 다시 하나의 방향으로 달려가려면

  불쑥불쑥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같은 방향을 달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길이 된다는 것

 

  한참을 비틀거리던 균형이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다시 행렬을 이루며

  힘차게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

  한껏 페달을 밟는 어깨 위로

  오후의 햇살이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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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2019-가을호 <미래시학 시단Ⅲ>에서

   * 이혜순/ 2010년『시안』으로 등단, 시집『곤줄박이 수사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