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슬픈 집중/ 박복영

검지 정숙자 2019. 11. 3. 22:07

 

 

    슬픈 집중

 

    박복영

 

 

  늙은 소가 무릎 꿇고 여물을 되씹는다

 

  저 집중에는 슬픈 공복이 있다 쟁기 끌며 땅의 속내 뒤집어 파헤칠 때 뒤꿈치 든 쟁기 날 쪽빛 하늘 기웃대다 철쭉꽃 너무 붉어 은근슬쩍 엿보다가 흐려진 논물에 새 그림자 놓치다가 등짝을 후려치는 목소리에 선몽 깨듯 불 지핀 새벽에 빈 몸으로 일어선 자리 야윈 무릎을 핥는 긴 혓바닥처럼 느긋하게 흘리는 굵은 침이 낡은 집의 서까래를 닦고 있다 받치고 있다

 

  허기져 봄볕 괸 눈망울에

  실핏줄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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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2019-가을호 <미래시학 시단Ⅱ>에서

  * 박복영/ 1997년 『월간문학』으로 시 부문 & 2014년《경남신문》으로 시조 부문 & 2015년《전북일보》로 시 부문 당선, 시집『낙타와 밥그릇』등, 시조집『바깥의 마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