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최영효_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발췌)/ 4만 원 : 오승철

검지 정숙자 2019. 11. 5. 01:02

 

 

<2019, 제19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작 특집 시조부문 본상 오승철/ 자선대표작> 中

 

 

    4만 원

 

    오승철

 

 

  서울에선 하늘도 공짜가 아니라고?

  중세유럽 주택세는

  창문 수로 매겼다던데

  고시촌 쪽방조차도 창 있으면 더 내라고?

 

  까짓것

  동안거 들듯 면벽하면 그만이지

  때때로 물숨 뿜는 혹등고래도 아니고

  한 달에 4만 원이면

  사나흘 치 컵밥 값인데

 

  그러나 그게 아녀, 세상은 그게 아녀

  화마가 지난 자리 엇갈린 삶과 죽음

  더 이상 떠밀릴 곳이 이승 말고 또 있다니

 

  막장 같은 가슴에도 복권은 들어있다

  비틀비틀 골목 불빛

  이끌고 온 그 사내가

  토악질 다독이듯이 다독이는

  서울의 밤

    -전문-

 

    * 심사위원: 이승은 · 박현덕(시인)  황치복(평론가)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시대의 소리꾼이 엮은 춤사위(발췌)_ 최영효/ 시인

  고시가 사라진 시대의 고시촌은 막장에 숨어든 인생들이 모여 산다. 그곳에 바깥 세상과 소통하고 숨 쉴 수 있는 창문이 달린 방의 월세는 4만 원이 더 비싸단다. 시의 배경은 그곳에서 화마에 앗긴 주검을 고발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화제가 나면 창문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지만 "4만 원"은 심리적 한계선을 넘어서는 금액이다. 그래서 "더 이상 떠밀릴 곳이 이승 말고 또 있다"고 하는 반문은 이곳이 인생의 막장임을 역설하면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토악질 다독이듯이" "서울의 밤을 이끌고 온 사내"의 "막장 같은 가슴에도 복권은 들어 있다"는 마지막 수다. 그 복권 속에 내일의 희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소주 한 병 마주하고 흥타령이나 돋구면 될 일을 "삶과 죽음"을 엇갈리게 한 화마의 현장을 재현하여 독자의 삼사를 건드리는 시인의 의도는 또 무슨 불길한 전조인가?.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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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9-가을호 <제19회 고산문학ㄷ대상 수상작 특집/ 자선 대표작/ 작품론> 에서

  * 오승철/ 1957년 제주 서귀포 출생. 1981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개닦이『오키나와의 화살표』등

  * 최영효/ 1999년『현대시조』추천 & 2000년《경남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노다지라예』『죽고 못 사는』외, 시선집『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