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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찾아서, 도연명의 <도화원기>/ 김경엽(金京燁)

검지 정숙자 2017. 11. 3. 03:14

 

<중국문학 산책>

 

 

    유토피아를 찾아서,

    도연명의 <도화원기>

 

       김경엽金京燁

 

 

  1. 낙원의 꿈, 무계정사

  봄날이 산책길에 오래된 집터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인왕산 자락이 흘러내리다 잠시 멈춘 듯 아늑한 곳이었다. 종로구 부암동 소재 "무계정사武溪精舍" 터였다. 집터 근처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武溪洞'이란 글씨는 힘차고 늠름했다. '무계'가 '무릉계곡武陵溪谷'의 준말이라면, 이곳을 그 옛적 이상향의 상징인 '무릉도원'으로 명명한 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궁금증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귀가하는 즉시 인터넷 검색엔진을 돌렸다.

  의문은 이내 풀렸다. '무계정사'는 1452년 5월결 세종이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이 지은 별장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둘째 형인 수양대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안평대군이 사사賜死되었다는 사실은 좀 아이러니했다. 낙원을 꿈 꾼 장소가 반역을 도모한 장소로 오인되어 그의 생명을 단축하는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무계정사는 5년 전 안평대군이 꿈을 꾸었던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2.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다

  안평대군이 꾼 꿈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 바로 저 유명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와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된 사연을 기술한 <몽유도원기>가 붙어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조선시대 비운의 왕자가 난세 속에서 욕망했던 이상세계를 만난다. 꿈은 생생하고 선명하다.

 

  "정묘년(1447) 4월 20일 밤 내가 자리에 눕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지며 깊이 잠든 동안 꿈을 꾸게 되었다. 박팽년과 함께 어느 산 아래 이르렀는데 첩첩 산봉우리는 우뚝하고 깊은 골짜기는 아득하였다. 복숭아꽃 수십 그루가 있었다. 숲으로 난 오솔길은 끝자락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고 있는데, 소박한 차림의 사람이 나타나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도원桃源입니다. '내가 박팽년과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그곳을 찾아가는데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수풀은 울창하였습니다. 시내를 끼고 구불구불 돌기를 백 번이나 한듯하여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골짜기에 들어서자 안이 넓게 트여 2~3리는 될 듯하였다. 사방으로 산이 둘러서 있는 가운데 구름과 안개가 자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깝고 먼 복숭아 숲에 햇살이 비치어 마치 노을이 지는 듯했다. 또 대숲에 띳집이 있는데 사립문은 반쯤 열려있었고, 흙으로 만든 섬돌은 이미 무너져있었다. 닭이나 새, 소나 말 같은 것은 없었다. 앞 내에 조각배만 물결을 따라 떠다닐 뿐이어서 그 쓸쓸한 정경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인 듯했다.

  여기에서 함참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박팽년에게 말하기를 '바위에다 나무를 얽고 골짜기는 구멍을 뚫어 집을 지었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도원 골짜기로다." 하였다."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도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선명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험준한 산들과 깊은 골짜기를 지나 그가 당도한 곳은 복숭아 숲으로 둘러싸인 낯선 마을이었다. 세상과 격리된 마을은 텅 비어 쓸쓸했으나, 햇살에 비친 복숭아 숲과 마을 정경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인 듯 신비롭고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안평대군은 이곳을 도원이라고 호명했으니, 그는 꿈속에서 홀연히 이상향, 유토피아에 당도한 것이다.

  그런데 안평대군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는 어쩐지 우리에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단락의 '바위에다 나무를 얽고 골짜기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지었다'는 말이 당나라 때의 시인 한유(韓兪, 768~824) 의 <제도원도시(題桃源圖詩, 도원 그림을 보고 지은 시) 중의 일부인 '바위에 나무 얽고 골짜기 파 집을 짓는다巖鑿谷開宮室'란 구절을 차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평대군의 기문 전체가 우리에게 강력하게 환기하는 중국의 고전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안평대군보다 1,000여 년 전의 인물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이다.

 

 

  3. 노자의 '소국과민'과 <도화원기>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4세기 말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 초기에 살았던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진-송 교체기로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시기였다.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불합리와 모순, 민중의 봉기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난세였다. 이런 시대 환경 속에서 갈등하던 도연명은 평택령 현령을 마지막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의 마흔한 살 무렵이었다. 이후에 그는 전원에 은거하며 손수 농사짓는 한편 시문 창작에 몰두하는 도가적 은일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렇게 정치현실에 실망하고 귀은의 삶을 전택한 후 상상을 통하여 이상사회를 희구하게 되었는데, <도화원기>는 바로 이러한 욕망에서 창작된 작품이다. 그런데 <도화원기>는 사실 노자老子가 제시한 이상사회의 모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하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다. 온갖 기물器物이 있어도 쓰지는 않는다. 백성은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하지 않는다. 배나 수레가 있어도 타지 않는다.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백성들은 끈으로 매듭짓는 문자를 다시 쓴다. 그 밥은 달고 그 옷은 아름답다. 그 거처는 편안하고, 그 풍속은 즐겁다.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이웃 나라가 빤히 바라다 보여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노자가 꿈 꾼 이상사회의 모습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적은 백성이 모야 사는 작은 나라'가 노자가 생각했던 이상사회의 조건이다. 이 세계에서는 배와 수레, 갑옷과 무기 같은 문명의 이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온갖 문물의 이기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식주는 소박하고 간소하며 풍속은 자연스럽다. 통치자의 간섭과 지배가 없는 '우위이치無爲而治'의 도가적, 파세적 정조가 넘친다. 가깝게 들리는 개 짖고 닭 우는 수리에서 이웃과의 교류는 정답고 평화롭다. 고대 중국의 성인은 이런 세상을 당시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세계로 꿈꾸었던 것이다.

  노자가 전한 '소국과민'의 이상세계의 꿈은 이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글들의 소재로 쓰여지게 되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노자의 이상향을 무릉도원으로 변주하여 묘사한 최초의 문학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도연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도화원, 그 신비롭고 황홀한 이상향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도록 하자. <도화원기>의 전문이다.

 

  "진 나라 태원太元 때 고기잡이를 하며 살던 무릉武陵 사람이 시내를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 그러다 홀연히 복두아꽃이 피어 있는 숲을 만났다. 언덕을 끼고 수백 걸음을 걷는데 다른 나무는 없었고, 향기로운 풀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지는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몹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 그 숲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숲은 시냇물이 시작된 곳에서 끝났는데 문득 산이 나타났다. 산에는 작은 입구가 있는데 마치 빛이 나오는 듯했다. 어부는 배를 버려두고 입구를 따라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매우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였으나 다시 수십 걸음을 더 가자 탁 트이며 훤히 밝아졌다. 땅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은 반듯하였다. 비옥한 밭과 맑은 연못,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있었으며 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닭 우는 소리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운데 오가며 씨 뿌리고 농사짓는 것과 남녀의 옷차림은 모두 바깥세상 사람과 같았다. 노인과 어린아이가 모두 기뻐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들이 어부를 발견하고는 매우 놀라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어부는 자세히 대답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청하여 술상을 차리고 닭을 잡고 밥을 지어내었다. 마을에 이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두 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 사람이 말하길 '선대에 진 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식과 고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온 후 다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깥세상과 멀어지게 되었지요.' 하더니,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요?' 묻는 것이었다. 진 나라 때 이곳에 들어왔다면 그는 한 나라도 알지 못할 것이니 위 , 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가 일일이 자세히 말해주니 모두들 한숨 쉬며 탄식하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모두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어부가 며칠을 머무르다 인사하고 떠나려 하자, 그곳 사람들이 '바깥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라 하였다.

  어부는 그곳을 나온 후에 배를 찾아 지난 번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군에 이르러 태수를 뵙고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태수는 즉시 사람을 시켜 그를 따라가 지난번 표시한 곳을 찾도록 하였다. 그러나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는 그곳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남양南陽의 유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이다. 그 얘기를 듣고 기뻐하여 나섰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곧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마침내 그 나루에 대해 묻는 자도 없게 되었다."

 

 

  4. '길 잃기'의 매혹

  첫 단락은 무릉도원이라는 공간에 가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도원을 향한 어부의 여행은 좀 이상하다. 그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도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원 찾기의 매혹적인 역설이다. 그렇다면 길을 잃기만 하면 누구든지 도원에 이르는가. 그럴 수는 없다. 도원 찾기는 아직도 요원하다. 다시 여행기로 돌아가 보자.

  길을 잃고 헤매던 어부는 '홀연히' 도화가 피어 있는 숲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어지러이 흩날이는 꽃잎 속에서 '몹시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그 시냇물의 발원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가 바로 도원으로 통하는 비밀스런 동굴의 입구이다. 어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우연의 연속 덕분이다. 도화 숲을 '홀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흩날리는 꽃잎을 '이상하게' 여겨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부는 영영 도원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상향이란, 선택이나 의지로 찾아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길을 잃어야만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도원, 이것이 도화원 여행의 첫 번째 매혹이다. 

 

 

  5. 도원에는 누가 사는가

  두 번째 단락은 무릉도원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묘사는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도원의 풍경은 초월적인 신선경이 아니다. 현실에서의 농촌 공동체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한다. 비옥한 논밭에 씨 뿌리고 때 맞춰 농사짓는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의 즐겁고 기쁜 웃음소리에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이따금 섞여든다. 소박한 생활과 고요한 일상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도원의 이러한 정경은 도연명이 평소 추구했던 전원생활의 분위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전원지 한 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방 택지는 10여 무이고 方宅十餘畝

  초가집은 8,9칸이 된다 草屋八九間

  느릅나무, 버드나무는 후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楡柳蔭後園

  복숭아나무 자두나무는 집 앞에 벌려 있다 桃李羅當前

  희미한 먼 마을에 曖曖遠人村

  가물가물 올라오는 촌락의 연기 依依墟里煙

  개는 깊은 골목에서 짖고 狗吠深港中

  닭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운다 鷄嗚桑樹顚

    -「귀원전거歸園田居 1수」, 부분

 

  위 시는 도연명이 평택령을 사직하고 귀향한 이듬해 봄에 농사를 지으며 느낀 감회를 서술한 작품이다. 도화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단박에 눈치 챌 수 있다. 도화원 사회는 도연명의 전원생활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한 상상의 낙원일지도 모른다.

  이 단락에서 보다 문제적인 건, 저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본문을 참조하자면, 그들은 '선대에 진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식과 고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온 후 다시는 나가지' 않아 지금의 바깥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오랜 전쟁 끝에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곧바로 만리장성과 아방궁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실시한다. 시황제가 공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가혹한 세금을 매겨 백성들의 생활을 도탄에 빠뜨린 사실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이런 폭압적 정치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봉기가 이어졌다. 일부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외딴 곳으로 피난하여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그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릉도원이란, 진나라와 같은 학정과 가혹한 수탈이 없으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간소하고 단순하다. 다같이 땀 흘려 농사짓고, 닭과 개 등 가축을 기르며 이웃과 다툼 없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야말로 도연명이 꿈꾸었던 전원세계이자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진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항우와 유방 사이의 초한楚漢 전쟁을 거쳐 한 나라가 건국하고 이후 위, 촉, 오 삼국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위나라와 진나라로 교체된다. 그러나 무릉도원 사람들은 그들 조상이 살던 진나라만 알뿐, 이 이후로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어부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시간이 멈추고 역사가 정지한 공간에 격절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들은 바깥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어부에게 자신들의 존재와 사는 공간을 외부에 알리지 말 석을 부탁한다. 왜 그랬을까정치적 폭압과 현실의 부조리가 더 이상 미치지 못하는 곳, 세상의 시비와 영욕을 초월하고 자급자족의 경제와 자연의 리듬대로 살아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6. 유토피아를 찾아서

  무릉도원에서 돌아온 어부는 그곳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기 위해 나오는 길목마다 표시를 해둔다. 그리고는 공을 세우기 위해 태수에게 그간의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말하고 만다. 그러나 도원은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향이란 누군가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공간이 아니다. 이상향은 의도적으로 찾는 이에게 절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찾는 이가 아닌, 길을 잃은 자에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길을 잃을 때에야 비로소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도원, 유토피아는 몽환적,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열린다.

  이렇게 이상향은 상상과 우연의 공간이다. 의도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영원히 차단되고 봉인된 공간이다. 누구나 바라지만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실재하는 순간,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다. 실재하지 않는 환상과 상상속의 공간이라야 한다.

  유토피아Utopia란 말은 영국 작가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가 그의 저서 『유토피아』를 쓰면서 만들어낸 용어다. 그리스어에서 연원한 이 말에서 'U'는 '없다ou' 의미와 '좋다eu'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접두사라고 한다.  'topia'는 장소를 의미하므로 이 둘을 합치면 세상에 '없는 곳' 또는 '좋은 곳'이란 의미가 된다. '좋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없는 곳'이란 뜻이겠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인 동시에 세상과 다른 좋은 곳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누구나 바라는 세상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구 누고도 거기에 가거나 그곳에서 삶을 향유할 수 없는 곳이다.

  무릉도원을 한번 가보았던 어부가 다시는 그곳을 찾지 못했고, 안평대군이 오직 꿈속에서만 도원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현실에서는 부재하는 유토피아의 공간적 환상설 때문일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유자기라는 선비의 죽음은 도연명 당대의 지식인 지식인의 삶의 조건이 얼마나 위태로웠는가를 보여주는 중대한 발언처럼 들린다. 현실을 떠나 새 세상으로의 탈주욕망이 얼마나 강했으면,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 병이 되어 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유자기의 죽음은 속세가 그만큼 벗어나고 싶은 고통과 질곡의 공간이었음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도화원기>는 매우 신비로운 문장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그 후로는 마침내 그 나루에 대해 묻는 자도 없게 되었다.' 영원히 봉인되는 유토피아의 순간이다. 다만 막막한 현실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문득 각자의 마음속에 홀연히 비쳐드는 한 줄기 빛, 그 빛을 따라갈 때 비로소 열리는 초월과 환상의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도원은, 유토피아는 누구에게 물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영원히 주소불명의 매혹적인 공간이라고 우리 귀에 속삭이는 도연명의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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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17-6월호 <연재|중국문학 산책 16회>에서

  * 김경엽金京燁/ 강원 원주 출생, 2007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비교문학비교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 총신대 교양학과 출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