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파트의 글

『계간 파란』 2017 여름호- 리듬(발췌)

검지 정숙자 2017. 12. 15. 13:54

 

 

   계간 파란 2017 여름             리듬

 

 

    issue  리듬(발췌)

 

 

 

  장철환(문학평론가)_ 리듬의 리듬 

  리듬Rhythm이라는 말 앞에서 리듬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은 확실히 리듬적이다. 마치 '에테르'가 무엇인지 생각할 때, 우리의 숨이 '가장 밝은 빛'의 리듬을 따르는 것처럼. 리듬은 실체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하나는 우리의 삶이 리듬적이라는 의미에서. 여기에는 우리의 죽음도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리듬도 역시 리듬적이라는 의미에서. 이건 무슨 뜻인가? 리듬이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유동하는 사변체라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가 리듬 속에 살고 있지만, 리듬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리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여기서 파생되는 질문은 이렇다. 일정한 거리를 일정한 시간에 이동하는 시계의 운동을 리듬이라고 할 수 있는가? 리듬의 기본 전제가 반복에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반복은 리듬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특히 동일한 것의 주기적 반복은 리듬의 말단에 지나지 않는다. (권두 에세이 p.2.3)

 

  김남우(정암학당 연구원)_ 호라티우스의 사포 시련 체계 수용 

  호라티우스는 기원전 23년에 세 권의 서정시를 묶어 첫 번째 시집을 발표하였다. 그전 발표물들은 풍자시와 비방시였기에 서정시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후 서간시를 발표하였으며 말년에 다시 서정시에 도전한다. 초기 서정시는 88편의 시를 담고 있다. 첫 시집의 마무리에 호라티우스는 그의 작업이 후세에 이렇게 기억되리라 생각하였다. "아이올리아 노래를 처음 이탈리아 운율에 맞추어 불렀다 나를 얘기하리라." 아이올리아는 소아시아의 북부 해안 지방을 가리키는바, 트로이아 지방을 포함하여 인근 섬들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희랍 시인 사포와 알카이오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레스보스 섬도 이 지역에 속한다. 초기 서정시 88편 가운데 무려 55편이 사포 시련詩聯 체계를 따른다. 기원전 13년의 후기 서정시는 15편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인데, 7편이 사포와 알카이오스 시련 체계를 따른다. (p.23~24) 

 

  이찬웅(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조교수)_ 리듬에 관한 들뢰즈의 세 구절 

  들뢰즈의 리듬 이론은 그러므로 단지 음악학이나 미학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존재론의 토대를 형성하는 개념망의 전승 안으로 뛰어들어 그것을 급진적으로 변형하려는 것이다. 들뢰즈의 내재성의 철학은 (신)플라톤주의와 달리 '존재'는 자기 자신을 분할하는 규칙을 자기 자신 안에 보유한다. 이것이 노모스nomos 또는 노마드nomade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유목민은 이동이라는 테마와는 본질적 연관이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영토 분할의 원칙을 자기 자신에게서, 즉 경험과 습관과 판례에서 찾는 것이다./ 자기-분할하는 '존재', 들뢰즈는 그것을 다양체multiplicite라고 부른다. 다양체의 정의는, 그것은 분할될 수 있지만, 분할될 때 본성이 변화하는 것이다. '세어지는 수'는 분할될 때 변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분할된 채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셈하는 수'는 실타래처럼 뭉쳐 있으면서 사건에 따라 펼쳐지는 수다. '존재'는 계기와 사건이 다르면 서로 다르게 분할된다(신플라톤주의의 영향 하에서 베르그손 역시 두 종류의 수, 또는 수 형성의 두 국면을 구별했다. "형성 중인 수"와 "일단 형성된 수"에 대해서 베르그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 p. 107 참조). '셈하는 수'는 그러한 사건과 동시에 펼쳐진다. '셈하는 수'가 리듬이다. 시간이 운동을 산출하고, 존재가 존재자들을 생산하는 과정을 리듬은 통괄한다. (p.50)

 

  임선기(시인,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벤베니스트의 리듬론을 통해 본 언어학의 '리듬' 개념

  플라톤은 언어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최초의 철학적 언어학자이다. 그는 로고스라 불리던 문장을 주부와 술부로 나누고 그 양자가 '조화롭게 어울린다(일치한다)'는 개념을 설정한다. 이때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것은 문법적이기 이전에 음악적 개념이다. 그것을 플라톤은 '하모니(일치)'라고 불렀는데 언어학자(문법학자)는 음악론자였던 것이다. 하모니에 대하여 플라톤은 그것이 리듬 또는 박자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수number의 문제라고 부연한다. 이 리듬 또는 박자라는 것은 다시 플라톤에 따르면 젊은이들과 같이 혈기 왕성하여 움직임이 많은 인간에서도 나타나는, 인간의 어떤 질서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리듬은 움직임 속의 원리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바탕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불변하는 것, 즉 진리의 위상을 갖게 된다. 리듬의 고전적 개념이 플라톤에 와서 이렇게 전복된다. 플라톤은 그 불변의 진리를 다시 '탁시스taxis'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응하거나 불응하는 목적을 갖는 조건반사의 원리이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육체의 움직임에도 리듬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 자극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하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이러한 리듬 개념은 타자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플라톤을 통과하여 리듬은 과거와 전혀 다른 의미에 도달하였는데 벤베니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리듬 개념은 구성 요소들의 변별적인 균형에 의해 규정된 '공간적' 형식에서, 결국은 지속 기간 속에 질서 있게 배열된 움직임의 '시간적' 형식으로 변하였고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리듬은 움직임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라고 적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리듬 개념이 서양의 리듬 개념의 두 축이라고 할 것이다. (p.65~66~67)

 

  정의진(상명대 프랑스어권지역학전공 교수)_ 산문의 시학, 운문의 역사성: 주체와 리듬의 인식론

  이와 관련해서 아마도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된 문장은, 1670년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초연된 몰리에르의 희극, 정확하게는 무도극인 「부르주아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의 한 대사일 것이다(무도극comedie-ballet. 즉 음악, 발레, 연극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장르). "전혀 산문이 아닌 것이 운문이며, 전혀 운문이 아닌 것이 산문이다." 이 대사는 사실 운문과 산문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혹은 시학적 정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대사라기보다, 극의 주인공인 부르주아 '므슈 주르뎅Monsieur Jourdain'을 비꼬고 희화화하는 극 전체의 흐름 속에서 나온 대사이다. 주르뎅은 갑자기 떼돈을 번 부르주아     즉 17세기 말 무렵의 의미로는 상당한 재산을 가진 평민     인데, 그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콤플렉스는 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영어의 'gentleman'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gentilhomme'는 오늘날 '신사'로, 즉 봉건적 신분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태도와 행동 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되지만, 몰리에르의 시대에는 궁정에서 유래한 귀족계급(noblesse)의 새로운 당대적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르주아 귀족」이라는 제목은 귀족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귀족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부르주아를 의미한다). 그의 꿈은 루이 14세의 궁정에 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그는 귀족처럼 보일 수 있는 화려한 옷들을 주문해서 입고 다니며, 음악, 무용, 펜싱, 철학 등 귀족이 되기 위한 소양을 연마하기 위하여 각 분야의 과외교사들을 채용한다. 어느 날 한 귀족부인에게 반한 주르뎅은, 부인을 유혹할 수 있는 멋진 편지를 철학 교사에게 부탁한다. 이 부탁을 받은 철학 교사가 "운문으로 써 드릴까요, 산문으로 써 드릴까요"라고 질문하자, 주르뎅은 운문이 뭐고 산문이 뭐냐고 되묻는다. 이 과정에서 철학 교사는 "전혀 산문이 아닌 것이 운문이며. 전혀 운문이 아닌 것이 산문이다"라는 그 유명한 문장을 내뱉는다. 자신이 평소에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산문이라는 것을 안 주르뎅은, "전혀 그런지도 알지 못한 채, 나는 40년이 넘게 산문으로 말해왔다"라고 탄식한다.극의 이러한 상황에서 연유하여, 오늘날 프랑스에서 므슈 주르뎅은 자기가 항상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 대한 고풍스러운 관용적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p.69~70~71)

 

  조재룡(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_ 리듬에 관한 몇 가지 메모와 단상/ 리듬 연구사 검토를 위한 시론

  프로조디? 프로조디는 음소의 집합이나 음소의 반복으로 도출된 형상이 아니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프로조디는 '자음과 모음이 조직되는 방식'이다. 프로조디는 음소의 중복이라는 국지적인 언어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다. 프로조디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양태, 나아가 그 운동을 의미한다. () 프로조디라는 용어에서 우리는 자주 음소의 중복에서 발생하는 표현성, 아니, 그 효과를 살피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프로조디는 근본적으로 통사와의 관계를 따져 의미 생산을 규명하는 데 소용된다. 여기서 통사와의 관계라 함은,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품사들과 관계를 맺으며 조직적인 특성을 취하게 되는지, 그 여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는 뜻이다. ()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의 표상, 리듬의 가장 영향력 있는 표상이 라톤 의해 이루어졌다. 플라톤은 '동적 운동'이었던 리듬 개념을, 강약의 규칙적 반복에 토대한 '템포'의 개념으로 정의하였고, 차후 온갖 이분법은 물론, 리듬이 규칙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수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E. Benveniste, "La notion de rythme dans son expression linguistique" in Problemes de linguistique generale, I. Gallimard. 1966. p.333). () 한국어의 리듬은, 수많은 연구가 개진되고 있는 지금,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그마한 용기 없이는 하기 어려운 말을 방금 했다. 그렇다. 리듬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언어와 시, 문화에 대한 관점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 하나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p.98.107.113~114.119~120)

 

  장석원(시인,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_ 리듬과 소쉬르*

  '너 뭐해'라는 문장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의문문일 수도 있고, 동시에, 화자의 상황에 따라 강세가 작동되면, 너는 지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힐난일 수도 있다. 화자와 청자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이 문장에는 물음표나 느낌표가 부여되기도 한다. 일상적 발화의 국면에서 벗어나 시 텍스트로 방향을 바꾸면, 주관성의 영역은 확장된다. 움직이는 유동체인 리듬의 주관성 때문에 리듬 이해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통사이다./ 통사는 객관성의 영역에서 리듬을 구성하는 하나의 체계이다. 통사는 문장을 조직하는 문법으로 좁혀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소쉬르의 '랑그' 같은 절대적인 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표-기의'와 '리듬-통사'의 관계는 비슷하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 필연성이 작동하듯, 리듬과 통사 사이에도 강력한 필연성이 구동된다. 시인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이다'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동사 '사랑하다'를 사용하려고 할 때, 한국어의 통사는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 순서로 문장을 배열할 것이다. 시적 주체가 이 문장의 서술어와 목적어의 어순을 바꾸는 경우, 문장의 전체 의미 변화 여부를 수반하는 '나는 사랑해 너를'이라는 문장이 기술된다. 이때 의미의 강세는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간단한 통사적 배열   여기서는 도치   이 강세를 부여하고, 이에 리듬이 형성된다. () 언어의 의미는 가치와 직결된다. 언어의 "구성 항들이 있는 곳에는 가치들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가치를 소쉬르는 "의미 작용signification의 동의어"라고 말한다. 소쉬르는 의미가 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만, "가치와 구별된 것으로 남"(Ferdinand De Saussure,『마지막 강의』, p.358)기도 한다고 말한다. 리듬은 의미가 아니라 가치   체계가 산출하는 의미의 차이   에 중점을 둔다. 리듬은 의미와 결합하고, 의미를 생산하고 조정하고 왜곡하고 재배열하지만, 리듬의 효과는 텍스트의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미를 포함하고, 그것이 통사적 질서 속에서 변형 가능성을 지닌다는 뜻으로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p.131~132.135~136 )

 

  조명래(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_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론과 도시의 리듬

  리듬은 그리스어 '리스모스rhythm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흐른다'는 뜻의 동사 '라인rhein'을 어원으로 한다. 그래서 리듬의 사전적인 뜻은 '강한 요소와 약한 요소, 서로 반대되거나 상이한 조건들이 규칙적으로 연속되는 움직임'이란 것이다.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라는 뷜로의 말처럼. 모든 움직임은 그 기원에서부터 리듬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이 '노모스'에서 리듬을 '운동의 질서'로 정의한 것은 리듬의 의미와 뜻을 가장 넓게 본 것이다. 음악, 무용, 회화, 시 등에서 리듬은 음, 몸짓, 시각요소, 시구 등이 운동 질서를 이루면서 미학적 의미를 생성해 낸다. 이러한 성질의 리듬은 신체, 사물, 동식물, 자연, 우주의 운동 질서만 아니라 언어, 일상, 조직, 권력과 관련된 사회와 제도의 운동 질서로도 나타난다. () 리듬은 '공간의 시간성, 시간의 공간성'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존재의 한 지점을 총합적으로 보여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리듬은 기본적으로 스타일(사회학에서 말하는 양태form과 같음)이지만, 다양한 관계를 맺는 얼개를 보여주는 관계적 스타일이다. 가령, 심장의 리듬이 빨라지는 것은 내 다리가 많이 움직이는 것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양태다. 심장의 리듬과 다리의 리듬은 이렇게 이어지면서 내 몸의 지금 상태(현전)를 드러낸다. 리듬은 그래서 '고저, 강약, 장단 등 움직임의 율measure'로 표현된다. 그것은 개별적일 수 있고(단리듬), 회귀하면서 반복하는 순환형(순환 리듬)일 수 있다. 복수의 것이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전체 리듬의 안전성을 유지하는 조화형(조화 리듬)일 수 있고, 어긋나고 파열하는 부정형(부정 리듬)일 수 있다. 작은 리듬과 같은 미시형(미시 개별 리듬)일 수 있는 반면, 여럿을 아우르고 통일하는 거시형(거시 총합 리듬)일 수 있다. 나의 리듬(자기 리듬 )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남의 리듬(타자 리듬)일 수 있다. () 르페브르는 『리듬 분석』의 많은 부분을 허상화된, 탈구된, 형식화된 '근대성의 리듬'이 갖는 문제를 논하고, 나아가 '현전'을 드러내는 리듬 분석의 방법을 논하는 데 할애했다. '현전'에 이르는 리듬 분석 방법으로 그는 변증법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헤겔의 '정-반-합', 마르크스의 '경제-정치-사회'등에 비견하여, 그는 '공간-시간-에너지'를 리듬 분석을 위한 변증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변증법의 매력은 변증법에 의한 제3항을 얻는 데 있다. 이것과 저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것으로 진화한 것이 곧 변증법에 의한 제3항이다. 리듬 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공간의 리듬과 시간의 리듬이 맞물린 지점에서 내 몸의 움직임(에너지)을 통해 발현되는 생명적 리듬, 조화적 리듬, 순환적 리듬을 찾아내는 것이다. () 오늘날의 도시 공간에서 다리듬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의 반복(리듬)이 다발로 엮어진 것이다. 이 두 유형의 리듬의 섞임이 곧 일상을 구성한다. 선형적 반복(리듬)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규율되는 노동의 조직화에 연동된 것으로, '취침→기상→출근→퇴근'의 선형적 반복이 이에 속한다. 이는 시계의 시간(24시간)과 같이 양화된 시간에 맞춰져 있다. 이에 반대되는 반복은 낮과 밤, 달과 계절 등과 같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생명의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순환 반복이다. 순환적 반복(리듬)은 우리의 일상을 우주적 리듬, 생명의 리듬, 생체적 리듬을 따르도록 한다. 선형적 반복과 순환적 반복은 현대적 일상에 상반된 시간의 규칙을 만들어주고, 또한 시간의 사용을 둘러싼 노-자 갈등의 중심축이 된다. 션형적 반복에 맞서 순환적 반복의 대등한 복원을 주창하는 리듬 분석가는 이런 점에서 해방된 '자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는 변혁가가 되어야 한다. (p.147~148.155~156. 169. 172~173)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_ '영화의 리듬'에 대한 몇 생각들

  반복되는 요소를 통해 기이한 리듬감을 만들어 내는 영화로는 단연 홍상수의 영화를 들어야 한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언제나 비슷한 상황이나 대사, 인물이 등장해 반복과 대구, 차이와 대조를 이루면서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가령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같은 영화는 수원에 내려온 영화감독이 화가를 만나 술을 마시고, 가까워지고, 실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2부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1부와 2부가 같은 상황의 반복인지, 비슷한 상황의 반복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비숫하다. 그래서 영화를 본 이들은 지금은 맞고 그때가 틀린 것인지, 지금은 틀리고 그때가 맞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홍상수는 비슷하거나 같은 상황의 반복을 통해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 그 과정의 고민과 생의 의미에 대해 묻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반복되는 상황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 기묘한 리듬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느끼는 리듬감을 한 단어로 정화하게 요약할 수는 없지만, 그 리듬감이 없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죽은 영화나 마찬가지다. 반복되지만 묘하게 다른 상황의 재현을 통해 우리는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볼 수도 있고, 이기적인 인간의 기억을 반추할 수도 있다. 그런데 홍상수 영화의 리듬은 단순히 작은 부분의 반복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 구조의 힘 안에서도 작동한다. 그는 기승전결의 고유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고집하지 않지만, 오히려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더욱 강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홍상수 영화가 지닌, 대중적인 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장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장르는 관객과 제작자의 약속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과 만나는 제작자가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가 바로 장르이다.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관객의 기대치를 채워 주는 것. 아주 짧게 요약하면 장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장르에는 각 장르마다 리듬이 있다. 멜로적 코드가 강한 신파는 최대한 상황을 길게 늘여 관객의 눈물을 자극한다. 반대로 관객의 공포를 자극하는 호러 영화는 전체 상황을 보여 주지 않고 부분에만 집중하면서 짧게 끊고 급하게 연결해 공포 분위기를 조율해 낸다. 코미디는 서브 장르에 따라 템포가 모두 다르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육체가 리듬을 만들어 내고, 스크루볼 코미디는 분위기와 대사가 리듬을 형성하고, 시츄에이션 코미디는 상황이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리듬을 형성하다가 결국 터뜨리고 만다. (p.189~190.191~192)

 

  장보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수료)_ 한국시의 리듬 인식과 근대의 서술

  시의 서술 방식은 상대적으로 '다 말하지 않음'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납득 가능한 맥락을 구현해 낸다. 시적 서술의 합당함은 시어 관계의 탄력과 그 언어 묶임의 구조에 따른 작품 장악력에 근거한다. 맥락은 중심이 되는 단어에, 동일한 이미지로, 의미의 유사성으로, 소리의 유사성으로 혹은 핵심적인 무엇의 대비들로 말이 공간과 흐름을 지배하는 식으로 발화의 종결을 이끈다./ 리듬은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언어에 수반된 발화 가능성이다. 지속적인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서의 리듬 지표들은 서술 기반인 언어에 잠재되어 있고, 언어들의 짜임 논리로 전체의 논리와 타당성을 획득한다. 맥락은 서술의 진실성과 감정 전이에 기여하며 시적 언어의 지속적인 발화 가능성을 증명한다. 서술상의 맥락은 흐름에 대한 인식의 단초며 서술상의 소리 - 의미 결합이 만든 상상성과 변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리듬이 발견되도록 돕는다. 서술상 맥락이 서로 간의 논리 관계에 타당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사실이나 세부 언어들 간의 소리와 의미의 결합에 끈끈함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연에 기댄 듯 나열된 말 흐름의 양상을 작품의 수용자가 파악하고 체화하여 재발화로의 연결로 연결되는 것, 그 가능성을 담은 것이 리듬이다./ 리듬 논의는 변화에 능동적이다. 단일 시어 연구의 차원에서 문장 수식 구조 차원으로 연구 범위와 분석 시각에의 변화가 일어났을 뿐, 아직 시 리듬의 명확한 원인이나 리듬의 실체 전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 리듬은 서로 다른 관점에 연속하여 흔들린다. 리듬은 시의 지배 관념이자 주로 반복하여 등장하는, 그만큼 강조되는 시어의 의미와 공백의 나열들이 뱉어 내는 말 행위의 운동성으로서 언어 전달, 접근에의 선행 정도는 떨어지지만 다양성에의 개진이자 문학적인 것, 그럴듯한 것, 나아가서는 말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주목하는 방향으로 논의계속될 것이다. (p.208. 219~220)

   - 권두 에세이 외 <issue 1 리듬> 필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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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2017-여름호 <issue 1       리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