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제2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바이올린 켜는 여자
도종환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
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
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
한 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
그 여자 얇은 아랫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는 악기가 되고 싶다
왼팔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내 몸의 현들을 그녀가 천천히 긋고 가
노래 한 곡 될 수 있다면
내 나머지 생은 여기서 접고 싶다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연애하고 싶다
그녀의 활에 내 갈비뼈를 맡기고 싶다
내 나머지 생이
가슴 저미는 노래 한 곡으로 남을 수 있다면
내 생이 여기서 거덜 나도 좋겠다
바이올린 소리의 발밑에
동전바구니로 있어도 좋겠다
거기 던져 주고 간 몇 잎의 지폐를 들고
뜨끈한 국물이 안경알을 뿌옇게 가리는
포장마차에 들러 후후 불어
밤의 온기를 나누어 마신 뒤
팔짱을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 수 있다면
-전문(p.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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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도종환/ 충북 청주 출생, 1984년 동인지『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고두미 마을에서』『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흔들리며 피는 꽃』『해인으로 가는 길』『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등, 산문집『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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