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승천(昇天)/ 이수익

검지 정숙자 2023. 8. 15. 01:27

<1995, 제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승천昇天

 

     이수익

 

 

  내 목소리가

  저 물소리의 벽을 깨고 나아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올라야만 한다.

 

  소리로써 마침내 소리를 이기려고

  歌人은

  심산유곡 폭포수 아래에서 날마다

  목청에 핏물 어리도록 발성을 연습하지만,

 

  열 길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쉽게 그의 목소리를 덮쳐

  계곡을 가득 물소리 하나로만 채워버린다.

 

  그래도 그는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제 목소리가 물소리를 뛰어넘기를 수없이 企圖하지만,

  한번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폭포는

  준엄한 스승처럼 곧추앉아

  수직의 말씀만 내리실 뿐이다

 

  끝내

  절망의 유복자를 안고 下山한 그가

  발길 닿는 대로 정처없이 마을과 마을을 흘러다니면서

  소리의 昇天을 이루지 못한 제 恨을 토해냈을 때,

 

  그 핏빛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소리꾼이라 하더라.

     -전문(p. 102-102)

 

    ------------------------

  *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이수익/ 1942 경남 함안 출생, 194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고별』『우울한 샹송』『슬픔의 핵』『침묵의 여울』『그리고 너를 위하여』『아득한 봄』등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1/ 나채형  (0) 2023.08.16
마음의 고향 · 6/ 이시영  (0) 2023.08.16
산중 어부 일기/ 김충래  (0) 2023.08.15
무녀도 책방/ 김차영  (0) 2023.08.15
큰 노래/ 이성선  (0) 202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