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석류(石榴)/ 이가림

검지 정숙자 2023. 8. 13. 03:13

<1993, 제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석류石榴

 

    이가림((1943~2015, 72세)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 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 주소서

   -전문(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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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이가림/ 1966⟪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빙하기『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순간의 거울』『내 마음의 협궤열자』등, 에세이집『사랑의 다른 이름』, 역서『촛불의 미학』『불과 꿈』『꿈꿀 권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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