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강수아
햇빛이 들지 않은 골목은 아직 봄을 모릅니다
고층 빌딩이 만들어 놓은 그늘이 어서 지나가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불안을 매달고 달려온 긴 터널의 끝에 익숙하게 놓여 있는 짐
무엇부터 옮길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봄을 먼저 호출해 봅니다
이사할 때가 되었구나 봄이 되었구나를 기억해 냅니다
계절은 마냥 새로워지고 솟아날 구멍 없는 짐들은 낡아가는 중입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제 몸의 허리띠를 졸라맵니다 먹고살 궁리는 언제나 트랙을 필요로 했고
누군가의 허리에 부딪혀 쿵 하고 넘어졌을 땐 별빛은 생목이 부러지고
봄마저 사정없이 모른 체했지만
이사를 해야 합니다
봄이면
봄이 되면
떠나야 합니다
-전문(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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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2집 『Sea & 詩』 에서/ 2023. 7. 20. <미네르바> 펴냄
* 강수아(본명: 강명숙)/ 2022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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