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 있는 건 멀다
박마리
그 일이 있고 난 뒤 너는 갈 수 있는 그 끝까지 가 있었다 정말 가도 너무 멀리 가 있었다
깨어진 균열은 좀체 힘을 빼지 않아 가슴이 하는 일을 등 뒤에 뒀다 아무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이 바쁘다
우린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다 각자의 팔만 열심히 흔들며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너만 멀리 가 있는 게 아니라 나도 멀리 와 있다는 걸 테니스 경기하는 멋진 네 모습을 보고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 보고 알았다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오로지 우리가 하는 일은 견뎌 내는 것만 했다
막힌 것들이 사이를 벌렸고 큰 구멍은 따뜻한 안쪽을 버렸다 벽을 눕히지 못해 나는 너를 잃었고 너는 나를 잃었으나 우리 사이를 살리는 찻집은 찾지 않았다
등 뒤에 있는 건 너무 멀었다 멀어 무슨 짓을 해도 너로부터 들키지 않는다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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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시포럼 제19집『마이클잭슨의 거미』에서/ 2022.11.10. <파란> 펴냄
* 박마리/ 1998년『라쁠륨』으로 시 부문 & 2012년 『한국소설』로 소설 부문 등단, 시집『그네 타는 길들이 아름답다』, 소설집『통증』『하이힐을 신은 여자』, 장편소설『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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