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신영조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 : 박지영

검지 정숙자 2022. 9. 8. 02:01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

 

    박지영 

 

 

  어느 나라든 역은 붐빈다

  이른 아침 룩셈부르크 역 앞

  갓 구운 빵과 커피를 앞에 두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서 한 노인이 안을 들여다본다

 

  이쪽과 저쪽의 세상은 어디에서든 있다

  아니 도처에 있다

  어린애가 가게 앞에 달라붙어 있듯

  노인은 계속 빵을 들여다보고 있다

 

  노숙을 하고 막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가 삐죽 솟아 있다

  빵에 눈이 꽂혀 있다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동전 몇 개 쥐어 주었다

  노인의 얼굴에 환하게 켜졌다

 

  빵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를 사들고 간다

  손을 흔들며

  뭐라 뭐라 하면서

    -전문, 시집『간절함은 늙지 않는다』(시인동네. 2022)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신영조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 슬슬 옆구리를 긁적이며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함'은 '절절함'의 다른 이름이다. '눈물'을 간절하게 빚어보면 '찬란'이 된다. ▩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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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신영조/ 1992년『심상』으로 등단,  시집『검은 맛』『사적인 너무나 사적인 순간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