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김재언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줍다 : 나희덕

검지 정숙자 2022. 9. 5. 02:46

 

    줍다

 

    나희덕

 

 

  조개를 주우러 해변에 갔었어요

  검은 갯벌 속의 조개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건 빈 껍데기뿐이었지요

 

  조개를 줍든 

  이삭을  줍듯

  감자를 줍든

  상자를 줍든 

 

  몸을 최대한 낮추고 굽혀야 한다는 것

 

  무엇을 만들거나 사지 않아도 돼요

  줍고 또 줍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죠

 

  쓰레기, 라는 말을 너무 함부로 쓰지 않나요?

  누군가 남긴 음식이나 물건이 그렇게 표현되는 건 슬픈 일이지요.

  그들은 버림으로써 남긴 거예요

  나의 나날은 그 잉여만으로도 충분해요

 

  어떤 날은 운이 아주 좋아요 

  누군가 먹다 남긴 피자가 상자째 놓여 있기도 하지요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신선한 통조림

  기분 좋은 말 몇 마디나 표정을 주워오기도 해요

  이따금 인상적인 뒷모습니나 그림자를 줍기도 하지요

 

  자아, 둘러보세요 

  주울 것들은 사방에 널려 있어요

  허리를 굽히며 다가가 건져 올리기만 하면 돼요

  손 만큼 좋은 그물은 드물지요

  다른 사람 몫도 조금 남겨두는 것은 잊지 마시고요

 

  그날의 해변처럼

  빈 껍데기만 남아 있지 않도록 말이지요

     -전문, 시집 『가능주의자』 (문학동네, 2021)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김재언

  '줍다'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어요. 껍질인 줄 모르고 줍는 것도  있지요. 그러나 주워서 기분좋은 말이나 오래 기억에 남는 모습을 줍는 경우도 있어요. 다시 줍는 것과 다시는 줍지 않는 일도있지요. 살다보면. ▩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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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김재언/ <시가마>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