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다
나희덕
조개를 주우러 해변에 갔었어요
검은 갯벌 속의 조개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건 빈 껍데기뿐이었지요
조개를 줍든
이삭을 줍듯
감자를 줍든
상자를 줍든
몸을 최대한 낮추고 굽혀야 한다는 것
무엇을 만들거나 사지 않아도 돼요
줍고 또 줍는 것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죠
쓰레기, 라는 말을 너무 함부로 쓰지 않나요?
누군가 남긴 음식이나 물건이 그렇게 표현되는 건 슬픈 일이지요.
그들은 버림으로써 남긴 거예요
나의 나날은 그 잉여만으로도 충분해요
어떤 날은 운이 아주 좋아요
누군가 먹다 남긴 피자가 상자째 놓여 있기도 하지요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신선한 통조림
기분 좋은 말 몇 마디나 표정을 주워오기도 해요
이따금 인상적인 뒷모습니나 그림자를 줍기도 하지요
자아, 둘러보세요
주울 것들은 사방에 널려 있어요
허리를 굽히며 다가가 건져 올리기만 하면 돼요
손 만큼 좋은 그물은 드물지요
다른 사람 몫도 조금 남겨두는 것은 잊지 마시고요
그날의 해변처럼
빈 껍데기만 남아 있지 않도록 말이지요
-전문, 시집 『가능주의자』 (문학동네, 2021)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김재언
'줍다'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어요. 껍질인 줄 모르고 줍는 것도 있지요. 그러나 주워서 기분좋은 말이나 오래 기억에 남는 모습을 줍는 경우도 있어요. 다시 줍는 것과 다시는 줍지 않는 일도있지요. 살다보면. ▩ (p. 17)
------------------------------
*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김재언/ <시가마> 동인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늘집/ 주경림 (0) | 2022.12.17 |
---|---|
신영조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간절함은 늙지 않는다 : 박지영 (0) | 2022.09.08 |
유수향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나는 : 문숙 (0) | 2022.09.04 |
이지희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기껏해야 거울이거나 : 강재남 (0) | 2022.08.28 |
배성숙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복도의 마음 : 이승희 (2) | 2022.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