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숙
가나의 어느 부족에선 사람이 죽으면
관 모양이 생전의 직업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어부였던 사람은 배나 물고기 모양
구두장이였던 사람은 구두 모양의 관에 담긴다
시인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는
시집이나 펜 모양의 관을 그려보지만
아니다 시로써 돈을 벌어보지도 못했으니
시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삼십 년을 주부로 살았으니 밥솥이나 냄비 모양을 생각해보지만
아니다 전업주부라 하기엔 시와 통정한 시간이 너무 길다
국적 없는 집시처럼 바람에 이끌리며 산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내 전부를 던져본 적 없어
작가로서도 주부로서도 이념도 없고 신념도 없다
이 시대의 작가라면 이름이 올랐을 블랙리스트에도
나는 운 좋게 빠져있는 시인이다
오늘을 살며 진보도 못되고 보수도 못되는 나는
붉은 깃발이나 태극기 모양은 더욱 아니다
가나식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관 모양이 없을 것 같다
-전문, 『문학청춘』(2017, 여름호)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유수향
재밌게 읽히는 시를 찾았다 재미있다고 자꾸 읽다가 슬퍼졌다. 내 슬픔은 무거운 구름이 될까? 구름이 무거워져 언젠가 비가 될까? 비처럼 시를 후두둑후두둑 마른 땅에 뿌릴 수 있을까? 시가 좋아서 시인의 흉내를 내는 사람은 어떤 모양의 관이 어울릴까? 앵무새 모양의 관을 하나 주문 제작하면 될까? ▩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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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유수향/ <시가마>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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