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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9-가을호/ 이슈(issue) : 책

검지 정숙자 2020. 2. 22. 03:06




   『계간 파란』2019-가을호             issue




   책의 미래, 시의 미래(발췌)__장철환/ 2011년 『현대시』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 『돔덴의 시간』『김소월 시의 리듬 연구』, 『영원한 시작(공저)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공저) 등, 『라깡 정신 분석의 핵심』(공역)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종이책이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로 진보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와 같은 종이책은 근대적 산물이다. 시집과 같은 종이책은 더욱 그렇다. 우리의 경우, 기존에 필사에 의해 낱장 또는 문집文集의 형태로 기록되던 시들이 인쇄에 의해 종이책으로 발간되기 시작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1921년 안서 김억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광익서관, 46배판)가 출판됨으로써 비로소 근대적 출판물로서의 시집이 그 외양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러한 형태의 독립적 시집 출간이 시의 유통 및 향유 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p.9-10) /// 이러한 장점들이 전자책의 급속한 성장을 가능케 했다. 2000년대 들어 전자책은 급격하게 성장했는데, 2014년에는 미국 책 소비 시장에서 전자책의 점유율이 26%에 달했다. 이를 종이책의 발전 속도와 비교해 보라. 1971년 마이클 하트에 의해 시작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부터 지금까지의 전자책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런 추세 속에서 종이책에 대한 비관과 전자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제출되기도 했다. 그건 전자책에 의한 종이책의 전격적 대체에 가까웠다. 종이책은 한때 지상을 지배했던 공룡들처럼 사라질 운명인가? 지금 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자책 소비 시장의 변화, 즉 2014년 26%에 달했던 전자책 점유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이를 종이책 부활의 전조 현상으로 간주해도 될까? (p.19)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 문학의 유통에서 문학의 소통으로(발췌)__이병국/ 2013년《동아일보》로 시 부문  &  2017년 문학평론 부문 등단, 시집『이곳의 안녕』 

  그런 이유로 전자책은 종이책의 동시대적인 기술적 연속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종이책의 장단점과 전자책의 장단점을 상쇄하려는 모든 논쟁은 전자책이 기본적으로는 물체가 아니라 출력장치로 읽어야만 하는 전자 텍스트라는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우베요쿰 저, 박희라 역, 『모든 책의 역사』, 마인드 큐브, 2017. p.205.)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매체로서만 인식될 때, 문학과 독자와의 소통은 접근성의 용이함 이외에는 어떠한 의미 맥락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단지 텍스트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는 문학을 유통하는 데 도움을 줄지언정 그것과 소통하고 의미를 정립하여 문학을 향유하는 이들의 존재를 풍요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p. 41-42) /// 중요한 것은 매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콘텐츠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에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어쩌면 '책'을 사유하는 방식부터 변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그룻이 나온다면 그에 합당한 내용물을 채워 유통하고 소통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를 비롯한 제3의 관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거친 하이퍼텍스트의 형태가 될지 아니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콘텐츠의 질적 변화가 없다면 유통 방식이 바뀐다고 해더라도 지속적인 소통은 어려울 것이다. 가능하고도 불가능한 상상력이 중층적으로 쌓여 터져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 (p. 43-44) 



  '문' 앞에서 쓴, 당신께 보내는 편지(발췌)__정재훈/ 2018년《세계일보》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

  김겨울 씨가 운영하는 '겨울서점'은 제가 구독할 당시에는 구독자가 약 2만여 명이었으나, 이제는 그 수가 1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어느덧 김겨울 씨는 '북튜버'라는 생소한 직업(?)의 대명사가 되었고, 현재는 '독서'와 관련된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문학, 비문학 가리지 않고 여러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어찌 됐든 유튜브라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가히 성공적이고, 독보적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투루베르'도 이들의 공연을 유튜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김겨울 씨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시'가 장르 음악의 친숙한 멜로디로 전해진다는 점과, 나름의 팬층을 형성했다는 점은 문학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제시한 이러한 사례들은 결국 '책'으로 귀결되거나, '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전의 것'(책)이 완전히 소멸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p-48) /// 저는 왜 '책'이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제 생각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매체의 진화는 계속되겠지요.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에게 무조건 편리하고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까지 독자들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있고, 그렇게 '책'을 구매하고, 그것을 읽는 일련의 행위에 담긴 의미를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물론 전자책의 가능성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책'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책을 읽고, 또 독립서점을 찾기도 하겠지요. 거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로서의 책임감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쁨,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은 (아직까지는) '책'으로만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디지털의 방식은 너무나 손쉽게 구매와 삭제를 오갑니다. 그러니 독자들이 스스로를 독려하고, 그렇게 자발적으로 짊어지려는 부담감(책임감)을 디지털의 방식은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p-63)


 

  종이책의 비밀(발췌)__차주일/ 시집 『냄새의 소유권』『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종이책을 펼치면 마침표 간격으로 움막이 놓여 있고, 처녀지 같은 빈칸마다 사람의 첫 발자국이 시작하고 있고, 행과 행 사이로 퍼져 나가는 길은 촌락의 여백을 결정하고 있다. 이 모든 풍경을 받아 그린 기호를 읽는 나는 왜 벽화 속 풍경을 감정으로 이해하게 되는가. 이것은 기록되는 기억과 기억되는 기록의 간극이 세계라는 의미가 아닐까. 몇몇 하루하루를 묶음 형상으로 만든 종이책이 세계의 총량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종이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생명의 입체적인 세계를 평면의 우리에 가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움막을 세우고 밭고랑을 만들어 '첫'을 시작한 정착과 경작을 기록하는 평지의 형식이다. 허구에 도착한 평지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겠는가.(p-70) /// 접촉이 없는 대상은 물질일 뿐이다. e-book이 공간을 갖는 독립적인 실재라지만, 땀과 체온과 타액과 접촉할 수 없는 형식일 뿐이다. 나는 여기에 꿈과 두려움과 감정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저장되어야만 영원한 감정들, 영원히 해석될 수 없는 사랑을 헤아리려고 인류는 얼마나 많은 기호를 쓰고 지웠는가. 그 생동하는 기호를 가두고 기를 수 있는 우리는 오직 종이밖에 없다. 종이가 심정을 빌려 주지 않았다면 밤에 그리는 사랑의 색깔은 이미 해독되어 폐기 처분된 감정이 되었을 것이다./ 종이책에는 먼눈을 열어 주는 감촉이 있다. 만약 눈이 먼다고 해도 나는 책의 어둠을 읽을 수 있다. 종이책은 안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접촉의 실물이기 때문이다. 읽던 책을 그저 품에 안을 때 타인의 생각이 느껴지는 이유는 접촉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이에 기록된 인류 역사는 기록 일부를 기억하는 역사가 아니라 모두가 첨언한 기록을 기억하는 역사이다. 이렇듯 표기할 수 없는 느낌을 그대로 저장할 수 있는 유일신은 종이책뿐이다. 종이책만이 과거를 미래이게 하는 혁명의 장소라는 것이다.(p-71)



  책을 덮을 것(발췌)__이근화/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칸트의 동물원』『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등

  인간에게 있어 서사의 허구성 문제라면 요즘 한창 읽히는 유발 하라리의 책들이 생각난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책 제목들도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두께 역시 꼭 읽어 보고 싶은 의욕을 부추긴다. 휴대하기 좋은 작고 얇은 책들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두꺼운 책을 들면 뭔가 꼭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가령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무료한 인간의 오후를 덮고도 남을 만큼이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마치 '소설처럼' 재밌게 읽힌다.인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나름대로 재구하는 그만의 방식이 흥미롭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는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며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로 허구에 대한 집단적인 믿음을 든다. 사피엔스는 객관적 실재와 가상적 실재라는 이중의 실재 속에 살아가게 되는데,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은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유발 하라리 저, 조현욱 역, 『사피엔스』, 김영사, 2015). 실체가 없는 관념에 대한 공동의 의지와 믿음이 인간 삶을 구성해 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견해이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는 것이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그의 말이다. 이 접착제가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는 그의 말은 공감과 설득력을 얻고 있다.(p. 75-76) /// 한편 제인 구달과 베아트릭스 포터는 경험적으로 세계를 발견하고 구성해 갔던 것 같다. 특별하고 전문적인 배움 없이 그저 좋아서, 인내심을 갖고 침팬지와의 생활을 기록했던 베아트릭스. 그녀들은 침팬지와 곰팡이에 대해서라면 아카데미에서 연구하는 학자들 이상의 것을 발견해 냈다. 그녀들의 끈기 있는 기록과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진 노트들이 궁금하다. 종이의 매력은 그것이 글자와 그림을 품고서 호흡하고 바스러져 간다는 것이리라. 품은 것을 인간들에게 살며시 혹은 격정적으로 내려놓고 말이다.(p-77)



  책 읽기의 쓸모에 대하여(발췌)__유희경/ 2008년『조선일보』로 시 부문 등단, 시집『오늘 아침 단어』『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등, 현재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운영자

  한쪽에서 웹 플랫폼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와중, 그 반대편에는 갖은 형태의 작은 서점들이 있다 이 작은 서점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그 수를 살펴보자. 동네 서점 지도를 발행하고 있는 퍼니플랜(https://funnyplan.com)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작은 서점의 수는 총 401곳이다. 인구의 38%가 연평균 한 권 이하의 책을 읽으며, 반나절 만에 도서를 배송해 주는 인터넷 서점이 두 곳이나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다. 같은 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 통계에선 더 늘어난 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도서 할인율을 제한하는 도서정가제가 현행처럼 유지된다는 전제로 작은 서점 붐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작은 서점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첫 번쨰는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독립서점이다. 독립출판물이란 ISBN(서지 정보 유통 지원 시스템)을 발급받지 않은 서적을 일컫는다. 이는 기존의 유통 시스템(혹은 출판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출판물의 저자는 곧 도서의 디자이너이자 제작자이며 동시에 마케터의 역할도 도맡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에서 자유로우며, 기성 출판사에서 다루지 않은 혹은 다루지 못하는 개성 넘치는 출판물이 만들어진다. 독립출판물의 주류는 비상업적 아트워크와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이다. 두 번째는 큐레이션 서점이다. 큐레이션 서점은 대개 정식으로 유통되는 서적을 다룬다. 이들의 무기는 말 그대로 큐레이션, 즉 선정이다. 각각의 서점들은 특정한 키워드를 가지고 서적을 선정한다. 저마다 개성을 띤 적극적인 큐레이션 활동을 통해 기존의 서점들(의 천편일률적인 서적 배치)과 차별성을 가지며 동시에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다. 연 50,000여 종이 출간되는 한국 출판 시장의 규모를 이용한 방식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작은 서점들은 독자들의 연합에 의해 유지된다. 독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서점을 방문해 도서를 구입함으로써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작은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편리함이나 저렴함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서점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소속감을 갖는다(동네 서점이라는 표현은 이에 비롯된다. 동네 서점에서 동네는 단순한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은 서점은 이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서 모임, 낭독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서점의 툭성을 알리고 '취향의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해당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조력한다. 그러므로 작은 서점의 생존은 얼마나 개성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작은 서점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모종의 카테고리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동안 관망적 태도를 유지하던 출판사들이 최근, 작은 서점을 위한 특별 에디션을 발간하고 그를 통해 행사를 유치하거나 북클럽을 모집하는 등의 작은 서점들과 적극적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작은 서점, 즉 취향의 공동체의 한계는 기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데에 있다.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 주지 못하는 서점은 신규 독자를 유입하는 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서점의 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독자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를 경우, 경제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작은 서점들은 우선적으로 정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p. 89-92)



  TMI* 가득한 권민경의 일상과 유구한 종이책(발췌)__권민경/ 2001년 《동아일보》르 시 부문 등단,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 TMI: '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네이버 지식백과)

  어쨌든 순수하고 끈덕진 순문학의 독자들은 아직도 느린 속도로 종이책을 소비한다. 나는 전자책을 먼저 소비하고 e-Book이 없을 경우 종이책을 산다. 단지 전자책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주거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 몇 번의 이사로 종이책이 얼마나 큰 짐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삶과 사회의 세태가 책의 소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몸소 체험한 예시이다. 주거의 안정을 위해 전자책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계층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계층의 문제는 정반대로, 극도의 디지털화로 인해서도 발생한다./ 내가 미래의 예술에 대해 호의를 갖고 지켜보는 것과 달리, 세대, 혹은 자본에 의해 "디지털화"에 뒤처진 사람들의 소외는 걱정된다. 만원 기차 안에 서서 가는 사람이 대부분 노년층인 이유는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해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문화의 혜택과 편리함을 누리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에 익숙한 사람일 테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비단 열차 예매에 그치는 문제인가에 대해선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 하루 동영상 시청 시간이 늘어난 것은 TV 덕이다. 다소 고가인 이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필수가 아니며, 선택의 문제이다. 또한 동영상 시청은 PC나 핸드폰을 이용할 수 있다는 대안도 존재한다(그렇기에 유튜브에서 장년 이상 층의 시청률도 낮지 않은 것이리라).(p. 101-102) /// 우리가 종이책과 더불어 다양한 매체의 책을 접할 수 있기 위해선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물론 그 인프라는 많은 이가 공평하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혹은 아날로그가 취향인 사람들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반대로, 앞선 것들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갖지 말라. 두 가지를 지키면 우리가 어떤 기술 과학의 공격을 받더라도, 파피루스 시대, 혹은 동굴벽화 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클래식'인 종이책과 함께 행복할 수 있으리라.(p-103)



  문학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들(발췌)__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시집『내가 나일 확률』

  작년 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한 작가가 출판사나 언론으로부터 청탁을 받지 않고도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고민하다가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연재를 시작한다. 월 1만 원의 구독료를 받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한 편의 글을 메일로 독자에게 직접 발송하는 이 셀프 연재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간 이슬아'다.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 칭하는 작가는 이제 학자금을 모두 갚고 독립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일간 이슬아'의 성공에 힘입어 작가가 직접 독자에게 이메일을 발송하는 구독 서비스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 김현진의 '월간 살려줘요 김현진', 이다의 '일간 마감',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등과 같은 작가 개인이 직접 발행하고 쓰고 전송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뮤지션 이랑이 주축이 되어 선보인 '알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는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창작자 30명의 글을 순차적으로 발송하는 구독 서비스다./ 이러한 이메일 구독 시스템은 작가가 어떤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독자들은 출근하는 길에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자신의 메일함으로 성실하게 배달되는 적당한 분량의 글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일상 중 하나의 성취나 기쁨으로써 문학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p. 110-111)/// 뇌 연구자 메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거의 모든 문화가 디지털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읽는 뇌도 변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는 온통 주의를 분산시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며, "우리에겐 고요한 눈을 키울 시간도 동력도 없다. 수확의 기억을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 역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경고하며, 인쇄된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 준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고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문학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들이 계속 출연하고 있으며, 이들이 문학과 바깥 세계가 만나는 표면적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길목을 따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책의 내부로 깊이 침투할 수 있으리라 낙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p. 113-114) 



  종이의 미래, 미래의 종이(발췌)__김건영/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중국의 경우도 웹소설 시장의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드라마화, 영화화까지 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무협지나 역사물, 로맨스물과 함께 선협소설(仙狹小設)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설정의 소설들이 유행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신선계에 몸을 담고 등선을 하는 것이 목표로 설정된 소설인데, 무협지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설정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최근에 한국 웸소설 플랫폼에도 번역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학사신공』이나 『일념영원』같은 소설이 있다.(p-121) /// 웹소설 연재나 유튜버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사람이라고 해서 글을 쓰지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거나, 시 낭독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고 해서 구독자가 생기고 광고 수익이 생길 리가 만무하다. 시는 인터넷에 전문이 올라오는 일이 허다하다. 독자가 올리기도 하고, 다른 시인이 올리기도 한다. 신문에 한 편씩 올라오기도 한다. 그저 사람들이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러다가 문득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도서관에 비치되는 책도 만 원, 소장하는 책도 만 원이다. 도서관은 아름답고, 많은 작가들은 가난하다. 물론 얼마 되지 않겠지만, 노래방에 등록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저작권료 책정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슬픔이 반주처럼 밀려온다. 책을 내고도 생활은 바뀌지 않고, 기금이나 상금에 의존해 멸종 위기 동물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도 한다. 종이책의 미래는 작가의 미래이기도 하다. 출판 시장의 규모가 작아져서 작가의 대우가 나빠진 것이라는 말은 이해한다. 그러나 작가의 대우가 나빠져서 시장의 규모도 작아졌다는 말 또한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독자들도 여유가 없다. 모두 밤에 집으로 돌아간다. 밤에 불을 켜 두고 책을 읽지 않는다. 불을 끄고 누워 웹소설을 읽는 것이 더 편한 일이다./ 종이책 출판 시장과 전자책 출판 시장은 전혀 다른 시장이다. 쉽게 온라인으로 전자책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해도 종이책을 살 수 있으면 종이책을 살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웹소설 시장이 커진 것은 오프라인 출판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생이 온라인이기 때문에 온라인 안에서의 저작권이 지켜질 수 있다. 종이책처럼 누군가에게 빌려 줄 수도 없다. 한참 소위 텍본이니 스캔본이니 문제가 된 장르 소설은 대부분 종이책으로 출판된 경우에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시와 소설들의 저작권을 강화한다면 오히려 그나마 남은 독자들도 잃을 것이 분명하다.(p. 122-123)



   * 『계간 파란』2019-가을호 <issue-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