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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2020-봄호/ 특집 좌담(발췌) : 낭송앨범 '퍼소나'에 대하여

검지 정숙자 2020. 3. 16. 18:25

 

<시와사람』특집 좌담/ 2020_봄호>

 

 

     시인의 아우라 담은 '낭송앨범'

    시인들 특별한 발화로 답하다

 

  일시_ 2020년 1월 15일

  장소_ 시 낭송 아카이브 '퍼소나'

  참석자_ 이현승(시인), 정한아(시인), 정다운(시인), 장철환(평론가)

  사회_ 신혜정(본지 편집위원)

 

 

신혜정(사회): 새해가 밝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20'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매우 미래적이면서도 상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데요. 2020년은 공상과학만화에서나 도래하는 시대인 줄 알았거든요. 자동차가 하늘을 떠다니고 음식은 캡슐 알약 같은 걸로 대체된 미래인간을 상상했는데 말이죠.(웃음) 그 상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웹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재편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눌 이야기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좌담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 낭송 아카이브- 퍼소나'에서 첫 낭송앨범을 낸 이현승, 정한아, 정다운 세 분의 시인과 이를 론칭한 장철환 평론가께서 자리해 주셨습니다. 저도 첫 낭송앨범이 출시되었으니 저까지 포함해 네 명의 시인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오늘은 시를 '소리' 라는 매체에 담은 것에 대한 의미, 그리고 매체의 다변화에 맞추어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에 있는지 다소 묵직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그에 앞서 먼저 근황부터 여쭙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p. 27)

 

 

장철환: 본의 아니게 오늘은 제가 작업하고 있는 '퍼소나'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네요.(웃음) 저는 시인들과 시 낭송 앨범 제작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저희 퍼소나(Per Sonar) 사이트 업그레이드 작업에 치중하느라 많은 앨범을 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겨울방학 기간의 시간을 앨범 제작에 매진할 계획입니다.(p. 27)

 

(……)

 

장철환: 퍼소나는 '시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시 낭송 아카이브'입니다. 2018년 2월에 퍼소나 스튜디오를 개설한 이후, 대한민국 시인들의 육성과 육필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인들의 육성 시를 녹음하고 이를 아카이브로 구축하여 퍼소나 사이트(www.personar.kr)에서 서비스 중입니다. 현재 대략 70여 명의 시인들의 80여 개의 앨범, 음원의 숫자로는 대략 900여 개의 낭송을 제작하여 저희 사이트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p. 29)

 

신혜정: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시 낭송 아카이브라는 개념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낭송'이라는 것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이북이나 오디오북처럼 기존의 책 시장에서 파생되는 것과는 달라 보입니다. 이것을 창안하고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p. 29)

 

(……)

 

장철환: 종이책과 시가 한 몸이라는 생각에서 우선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지술과 인쇄술, 제책 기술의 발전으로 지식의 기록과 보존, 전파가 매우 용이해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종이책이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 진보의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가 종이책으로 발간되기 시작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곧잘 잊곤 하지요. 기원의 측면에서 볼 때 시와 노래가 같은 뿌리에서 발전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시라는 장르는 서양의 발라드뿐 아니라 향가, 고려가요, 악장, 시조 등이 모두 곡조를 지닌 노래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랫말로서 시가 향유되어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근대적 형태는 독립적 저작물로서의 시집의 발행이라는 형태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종이책의 형태라 하더라도 시의 청각성이 사라질까요? 문자의 형태로 전유된다는 것이 꼭 청각성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저는 시가 매우 특별한 발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가치와 의의는 음성 언어에서 보다 더 잘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종이책 시장에서 이북으로, 다시 오디오북의 점유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사실 자본과 산업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는 그 관심의 대상에서 좀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렇다고 시가 사라지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시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라고 말이지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시의 플랫폼을 개발하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퍼소나에 담은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p. 49-50)

 

신혜정: 제가 던진 우문에 여러 가지 현명한 방식으로 답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꼬박 샐 만큼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수용하면서 지금 우리의 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 의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함께 참여한 퍼소나의 시 낭송 앨범 작업이 기여하는 바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혹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시와 독자를 잇는 데에 어떤 기여를 하며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p. 50)

 

이현승: 우선 시인들이 시를 쓰고, 그것을 다시 읽는 데,  얼마간 소리내어 읽는 일의 선명성이 다시 쓰는 선명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여하한의 시들은 발화와 수용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재전유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플랫폼의 변화는 읽는(낭송) 버전 위에 듣는 버전 하나를 추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 그대로 감각의 분화를 유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종 들어서 너무 좋았던 시를 눈으로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는 그냥 좀 밋밋해 보이는데, 시인의 육성과 함꼐 아주 풍부하게 느껴지는 시들이 있더라고요.(p. 50)

 

정다운: '소리로 들으니 좋았다', '다른 방식도 재밌다'는 경험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같은 글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듯이, 내가 내는 소리와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의 차이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았어요. 이해와 분석의 깊이뿐 아니라 기분과 정서도 차이를 만들어내겠지요. 이런 흡수를 통해 다른 경험에 관심이 늘어날 테고, 독해가 더 풍성해지고, 접근 목적 이상의 것이 충족될 겁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기를 자극하는 시도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크고 작은 시도들이 보호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면 합니다.(p. 50-51)

 

정한아: 우선, 시를 눈으로 읽는 것을 즐거움의 전부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실은 오래된 아이디어입니다만) 충격이 된다면 그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시인들은 늘 시를 쓸 때 대개 입속으로나 입 밖으로 계속 읽으면서. 말들을 '굴리면서' 시를 쓰니까요. 그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시들을 태어난 방식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시를 즐기는 본연의 방법의 하나입니다. 한편, 이 작업은 단지 시 향유의 '시장'을 넓힌다는 것 이외에, 시를 쓴 사람이 시를 읽어낸 '기록'을 남긴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것이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시인의 목소리를 통한 시의 보존에까지 국가의 손길이 미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 수도 있겠지요. 퍼소나는 거의 한 사람에 가까운 인력과 금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미션을 수행하는 중입니다.(p. 51)

 

장철환: 과찬의 말씀이시고요. 한 가지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시인들의 목소리의 아카이브는 아주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건 단지 현재의 독자들과의 새로운 소통 창구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미래의 독자들에게 전해줄 현재의 발화이기도 합니다. 보이저 1호에 실린 골든디스크의 이름은 "THE SOUNDS OF EARTH"입니다. 지금의 시인들의 목소리와 아카이브는 미래의 인류에게 전해줄 우리들의 소중한 목소리입니다. 거기에 퍼소나라는 시 낭송 아카이브가 아주 조그만 기여를 한다는 것, 아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p. 51)

 

신혜정: 이 시간이 감동스러운 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겠죠? 보이저 1호에 실린 지구인들의 목소리만큼이나 이 아카이브는 귀한 자산이 될 거라는 울림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일이 대중이나 정책의 차원 어디에서든 더욱 확장되고 또 시를 통한 새로운 모색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퍼소나 아카이브에 참여한 우리들의 소감과 퍼소나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이 시간을 정리할까 합니다.(p. 51-52)

 

정한아: 시를 읽고 쓰고 듣는 세계를 만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p. 52)

 

이현승: 사람의 목소리에도 여러 겹이 있겠죠? 그런데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목소리라면 그중에서 가장 깊은 내면의 소리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를 읽는 시인의 목소리는 여러 개성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를 듣는 입장에서는 시인의 가장 내밀한 개성을 만난다는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시만 들어도 지겹겠지요. 하지만 잘 자리잡힌다면 짧은 자투리 시간에 내면의 깊은 곳을 위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p. 52)

 

정다운: 퍼소나의 1차 큐레이션을 맡으면서 시인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큐레이션을 참고해서 시를 듣게 된다면, 여러가지 목소리를 들어보고, 좋아하게 되고, 모두에게 같은 정의가 내려진 어떤 기분이 들 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경험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저 역시도 좋아하는 시인의 시는 처음 듣는 것처럼 담담하게 들어보고, 익숙하지 않은 시인의 시는 더 많이 들어보려고 했었어요. 마음을 안 들키려 애쓰고 결국 티가 나는, 사람을 알아가는 설레는 순간 같은 게 여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았습니다.(p. 52)

 

장철환: 한 줄 요약으로 표현하면, '무조건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여러 어려움도 있지만 그에 따르는 보람도 매우 큽니다. 지금까지 출시된 시 낭송 앨범 일흔여 개에 이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앨범을 제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예정된 수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대한민국의 모든 시인들의 낭송시집(앨범)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웃음) 다만, 매월 평균적으로 열 명 정도의 시인들을 모시고 앨범을 제작하고자 합니다. 현재 회원제, 부분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는데, 향후에는 다른 방식으로도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직접 소장할 수 있는 CD와 같은 형태의 앨범 제작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앤솔로지 형태의 CD가 제작될 것 같습니다.(p. 52-53)

 

신혜정: 정말 귀한 말씀들입니다. 이 아카이브가 향후 어떤 경로로 확장되고 움직일지, 그리고 새로운 시도의 첫 줄을 장식한 퍼소나가 어떤 역사로 기록될지 기대와 성원의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와 소리, 매체에 대한 변화의 물결에서 새로운 시도와 모색들이 다양한 장에서 나오기를 바라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p. 53)

 

 

※ 퍼소나 시이트는 시인들의 시 낭송 앨범을 제작하는 국내 최초, 최대의 아카이브다. 퍼소나 - www.personar.kr 웹사이트 및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되며, 앱(App)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퍼소나'로 검색하여 다운로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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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사람』2020-봄호 <『시와사람』특집 좌담>에서